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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y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廿世紀之怪物 帝國主義)』 | 고토쿠 슈스이 | 1901

by kimkyunghyun 2026. 10. 9.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廿世紀之怪物 帝國主義)』

고토쿠 슈스이 지음 · 우치무라 간조 서문

 

1901년 일본어 원전 한국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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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역을 읽기 전에

 

고토쿠 슈스이(幸徳秋水, 1871~1911)는 일본의 언론인이자 사회주의 사상가로, 이후 아나키즘으로 전환한 사회운동가이다. 제국주의와 전쟁을 비판하고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으며, 1911년 대역사건으로 처형되었다. 

 

이 책은 고토쿠 슈스이가 1901년에 발표한 반제국주의 논설이다. 애국심과 군국주의가 어떻게 결합하고, 그 결합이 누구에게 이익을 주며 누구에게 희생을 떠넘기는지를 묻는다. 오늘날의 독자는 저자의 국제주의와 반권위주의적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그가 아나키즘으로 전환하기 전에 쓴 저술이므로, 본문에 나타나는 국가의 목적, 의회, 사회주의 제도에 관한 주장도 당시의 맥락대로 읽기를 바란다.

 

번역의 저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 『帝國主義』(警醒社, 1901년 4월)의 스캔이다. 원문의 장과 절을 따르고, 긴 문장은 논리와 어조를 유지하면서 나누었다. 원문의 방점과 문단 앞 원표는 별도의 기호로 옮기지 않았다. 따라서 이 번역은 본문과 서문·머리말·권말 자료를 옮긴 것이며, 소장본의 모든 인쇄 요소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은 저자가 가리키는 당시 일본과 일본 국민이다. 본문 속 현재형과 통계도 집필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원문의 뜻과 논리, 부정과 조건, 수치 및 시대적 표현을 보존하는 것을 번역의 기준으로 삼았다. 오자로 의심되더라도 판본 근거가 없는 글자와 수치는 임의로 고치지 않았다. 번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만 바로잡고, 원저자의 서술과 편집자의 설명을 구분했다.

 

각주는 모두 역주다. 인명과 지명, 고사와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고, 사실관계에 보충이 필요한 곳은 저자의 서술과 구분했다. 인용문은 이 책의 일본어 인용을 번역한 것으로, 인용 대상의 원어 정본을 새로 번역한 것은 아니다. 당시의 문명관이나 민족에 대한 표현은 논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남겼으며, 이를 오늘의 평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 번역에는 원문의 장·절 구분 외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서의 상세 목차와 난외 소표제를 한국어로 옮겨 추가하였다. 소표제는 저자가 각 대목에서 다루는 논점을 간략하게 표시한 것으로, 본문과 구별하여 표기하였다. 한국어 표현은 원문의 의미를 따르되 현대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었다.

 

이 저술의 정식 원제는 『廿世紀之怪物 帝國主義』(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이다. 『帝國主義』는 약칭에 해당하며, 현대 일본어에서는 『二十世紀之怪物 帝国主義』로 표기하기도 한다. 본 번역에서는 본문의 서명 『제국주의』를 사용하되, 정식 원제를 함께 밝혀 원저의 서지적 정보를 보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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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에 부치는 서문

 

인류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앙과 완력의 다툼이다. 신앙이 완력을 누를 때도 있고, 완력이 신앙을 누를 때도 있다. 빌라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에는 완력이 신앙을 이겼다.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참회를 요구했을 때에는 신앙이 완력을 이겼다.¹ 신앙이 완력을 제어하면 세상에 빛이 들고, 완력이 신앙을 억누르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지금은 완력이 다시 신앙을 누르는 암흑의 시대다.

 

1.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의 처형을 승인한 로마 총독이다.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390년 테살로니키 학살의 책임을 물어 테오도시우스 1세에게 공개적인 참회를 요구했다. 서문의 ‘신앙’은 이 두 사례를 통해 세속 권력에 맞서는 종교적·도덕적 확신을 뜻한다.

 

 

조정에는 우주의 조화를 논하는 철학자가 한 사람도 없건만, 육지에는 열세 개 사단의 군대가 있어 가는 곳마다 창칼이 번쩍인다. 민간에는 백성의 시름을 달래줄 시인이 한 사람도 없건만, 바다에는 총 26만 톤의 전함이 있어 평온한 해상에 거센 물결을 일으킨다. 집안의 질서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아비와 자식이 서로 원망하고, 형제끼리 싸우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업신여기는 판에, 바깥을 향해서는 동해의 벚꽃 나라요 세계의 군자국이라고 뽐낸다. 제국주의란 실상 이런 것이다.

 

벗 고토쿠 슈스이 군이 『제국주의』를 완성했다. 젊은 나이에 오늘의 문단에서 독자적인 기치를 세운 그의 활약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지만 세상에서 이른바 애국심이라고 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자유로운 나라에 가본 적이 없지만 진지한 사회주의자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을 벗으로 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독창적인 저술을 세상에 소개하는 영예를 얻은 데 감사한다.

 

 

1901년 4월 11일 

 

도쿄시 외곽 쓰노하즈 마을에서 

 

우치무라 간조²

 

 

2.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1861~1930)는 일본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개신교 사상가이자 기독교 신앙운동가이며,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의 창시자이다. 그는 서구의 제도화된 교회와 교파, 성직자 중심의 종교 체계에서 벗어나 성경을 중심으로 개인의 양심과 내면적 신앙,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하였다.

 

1861년 일본 에도(현재의 도쿄)의 무사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무사도 정신과 서구의 기독교 사상을 함께 수용하였다. 삿포로 농학교 재학 중 윌리엄 S. 클라크가 남긴 기독교적 교육의 영향을 받아 신앙에 입문하였으며, 이후 기독교적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자신의 사상적 중심에 두었다.

 

1891년에는 제일고등중학교 재직 중 교육칙어 봉독 의식에서 천황의 서명에 대한 예를 충분히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른바 불경사건(不敬事件)에 휘말려 교직을 떠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개인의 종교적 양심 사이의 갈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후 그는 특정 교회 조직이나 교파에 소속되는 것보다 성경 연구와 자발적인 신앙 공동체를 중시하는 무교회주의 신앙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강화되던 일본 사회에서 신앙에 근거한 양심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비전론을 주장하는 등 기독교적 평화사상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의 사상은 일본을 넘어 한국의 기독교 사상과 민족의식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김교신, 최춘선을 비롯한 한국의 무교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제도적 종교의 권위보다 성경과 개인의 양심을 중시하고, 국가권력과 종교적 권위로부터 신앙의 자율성을 지키고자 했던 일본의 근대 기독교 사상가이자 동아시아 무교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서문은 그가 썼으며, 고토쿠의 종교관과 동일하지 않다.

 

 

머리말 세 가지

 

하나. 동양의 정세는 날로 급박해지고 세상은 공명을 좇아 열광한다. 이른바 지사와 애국자들이 저마다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눈을 부릅뜨는 때에, 나는 홀로 차분히 이치를 따지고 도덕을 말한다. 애산의 배 안에서 『대학』을 강론하는 꼴이라는 비웃음을 들으리라는 것은 나도 안다.³ 그래도 기꺼이 이 일을 하는 까닭은, 오래도록 지켜야 할 이 도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스스로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다. 아, 나를 알아줄 것도 아마 이 글일 것이요, 나를 죄줄 것도 아마 이 글일 것이다.⁴

 

하나. 이 책에서 논하는 바는 유럽과 미국의 식자들이 진작부터 절실하게 경고해 온 것이다. 오늘날에는 톨스토이, 졸라, 존 몰리, 베벨, 브라이언이 그중에서도 두드러진다.⁵ 이 밖에도 가장 앞선 도의와 가장 고결한 이상을 지닌 이들은 모두 이 문제를 놓고 간절히 충고하고 서로 깨우쳐왔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지었다’고 하지 않고 ‘서술했다’고 적는다.

 

하나. 자그마한 책자에 내 생각을 남김없이 펼칠 수는 없었으나, 그 대강은 제시했다고 믿는다. 세상에서 자잘한 일에만 매여 사는 이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라도 눈을 뜰 계기가 되고, 그리하여 진리와 정의에 털끝만큼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내 바람은 그것으로 족하다.

 

 

1901년 4월, 벚꽃이 한창인 때 

 

초호사 편집국에서⁶

 

슈스이 씀

 

 

3. 1279년 남송이 멸망할 무렵 육수부가 어린 황제를 모신 배에서도 『대학』을 강론했다는 고사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현실과 동떨어진 도리를 논한다는 비웃음을 미리 받아들이는 표현이다.

4. 『맹자』에 전하는 공자의 『춘추』 관련 발언, 곧 자신을 알아주는 것도 죄주는 것도 『춘추』일 것이라는 말을 변용했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 知我者其惟春秋乎! 罪我者其惟春秋乎!(지아자 기유춘추호, 죄아자 기유춘추호),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일 것이며,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일 것이다!"

5. 레프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작가이자 비폭력 사상가, 에밀 졸라는 프랑스의 작가, 존 몰리는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가, 아우구스트 베벨은 독일 사회민주주의 지도자,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미국 민주당 정치가다. 이들은 동일한 사상 유파에 속하지 않았지만 전쟁·군국주의·식민지 팽창 비판의 여러 흐름을 대표한다.

6. 초호사(朝報社)는 신문 『요로즈초호』(萬朝報)를 발행한 신문사다. 고토쿠는 당시 이 신문의 기자였다.

 

 

제1장 서론 (第一章 緒言)

 

제국주의는 들불과 같다 (帝国主義は燎原の火なり)

 

이른바 제국주의의 유행이 얼마나 거센가. 그 기세는 들판을 태우는 불길과 같다. 세계의 나라들이 모두 그 발아래 엎드려 찬양하고 숭배하고 떠받든다.

 

보라. 영국은 정부와 민간이 온통 그 신자다. 전쟁을 좋아하는 독일 황제는 열렬히 이를 선전한다. 러시아에서는 본래부터 내려온 정책이라고 한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도 몹시 반긴다. 미국마저 최근에는 열심히 뒤따라 배우려는 듯하다. 우리 일본에서도 청일전쟁의 대승 이후 위아래 할 것 없이 열광하는 모습이 멍에를 벗어난 사나운 말 같다.

 

 

무슨 덕이 있고 무슨 힘이 있는가 (何の徳あり何の力ある)

 

옛날 다이라노 도키타다는 ‘다이라 가문 사람이 아니면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니다’라고 자랑했다.⁷ 오늘날에는 제국주의를 받들지 않으면 정치가도 정치가가 아니고 국가도 국가가 아닌 듯하다. 도대체 거기에 어떤 덕이 있고 어떤 힘이 있으며, 무엇이 그토록 귀하기에 이처럼 널리 퍼지는가.

 

 

국가 경영의 목적 (国家経営の目的)


국가를 운영하는 목적은 사회의 지속적인 진보와 인류 전체의 복리에 있다. 그렇다. 눈앞의 번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이어질 진보에 있고, 소수 계급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복리에 있다. 그런데 지금 국가와 정치가들이 떠받드는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그러한 진보를 얼마나 보태주려 하는가. 그러한 복리를 얼마나 가져다주려 하는가.

 

 

과학적 지식과 문명적 복리 (科学的智識と文明的福利)


나는 믿는다. 사회의 진보는 참다운 과학적 지식에 기초해야 하고, 인류의 복리는 참다운 문명의 도덕에서 솟아나야 한다. 그 이상은 자유와 정의여야 하며, 궁극에 이르러야 할 곳은 박애와 평등이어야 한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이 길을 따르면 번성한다. 추위에도 늦게 시드는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오래 견딘다. 이 길을 거스르면 봄밤의 꿈처럼 사라진다. 제국주의 정책이 과연 이러한 기초와 원천을 갖추고 이러한 이상과 궁극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것은 사회와 인류에 내려온 하늘의 복음이다. 나도 기꺼이 그 앞잡이가 되겠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국주의를 일으키고 퍼뜨리는 것이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미신이고, 문명의 도의가 아니라 광열이며, 자유·정의·박애·평등이 아니라 억압·사악함·완고함·투쟁이라면 어떻겠는가. 이런 비열한 감정과 악덕이 정신과 물질 양면에서 세계의 나라들을 끝없이 지배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해악이 넘쳐흐를 일을 떠올리면 어찌 몸서리치지 않겠는가.

 

 

천사인가 악마인가 (天使か悪魔か)


아, 제국주의여. 네가 온 세상을 휩쓰는 힘은 이 20세기의 천지에 적광정토를 펼치려는가, 아니면 무간지옥으로 떨어뜨리려는가.⁸ 진보인가, 부패인가. 복리인가, 재앙인가. 천사인가, 악마인가.

 

 

머리와 이마가 타들어갈 만큼 다급한 과제 (焦頭爛額の急務)

 

그 실상과 본질을 밝히는 일은 20세기의 경영을 맡은 이들에게 머리와 이마가 타들어갈 만큼 다급한 과제가 아닌가. 이것이 뒤늦게 배운 재주 없는 내가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말을 거듭하는 까닭이다.

 

7. 다이라노 도키타다(平時忠, 1130~1189)의 발언으로 전해지는 말이다. 다이라 일문의 전성기 권세를 드러내는 표현을 제국주의의 획일적 지배에 빗댔다.

8. 적광정토 또는 상적광정토(常寂光淨土)는 불교(특히 천태종)에서 부처가 머무는 궁극적인 깨달음과 진리의 세계, 무간지옥은 고통이 끊이지 않는 지옥이다. 종교적 비유를 대조해 제국주의의 결과를 묻는다.

 


제2장 애국심을 논한다 (第二章 愛国心を論ず)

1

 

제국주의자들의 함성 (帝国主義者の喊声)


우리 국민의 세력을 넓혀라. 우리 영토를 늘려라. 대제국을 건설하라. 우리 국위를 떨쳐라. 우리 국기를 영광스럽게 하라. 이것이 이른바 제국주의자들의 외침이다. 그들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참으로 깊다.

영국은 남아프리카를 공격했고, 미국은 필리핀을 토벌했다. 독일은 자오저우를 차지했고, 러시아는 만주를 빼앗았다. 프랑스는 파쇼다에 진출했고, 이탈리아는 아비시니아에서 싸웠다.⁹ 최근 제국주의가 실행된 뚜렷한 사례들이다. 제국주의가 가는 곳에는 군비가, 아니면 군비를 뒤에 둔 외교가 어김없이 따라간다.

 

 

애국심을 날실로, 군국주의를 씨실로 삼다 (愛国心を経とし軍国主義を緯とす)


그 전개 과정을 보라. 제국주의는 이른바 애국심을 날실로, 이른바 군국주의를 씨실로 삼아 짠 정책이 아닌가. 적어도 애국심과 군국주의는 지금 열강의 제국주의에 공통된 조건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말하려 한다. 제국주의의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가리려면 먼저 애국심과 군국주의를 낱낱이 살펴야 한다.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愛国心とは何物ぞ)


그렇다면 지금 말하는 애국심 또는 애국주의란 무엇인가. 이른바 패트리어티즘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자기 국가나 국토를 사랑하는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

 

9. 각각 제2차 보어전쟁(1899~1902, 대영제국과 네덜란드계 이주민인 보어인들의 두 공화국인 트란스발 공화국, 오라녀 자유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미국·필리핀 전쟁(1899년 발발,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지배권을 넘겨받은 미국에 맞서 필리핀이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벌인 민족해방 전쟁이자 독립 전쟁), 독일의 자오저우만 점령과 조차(1897~1898, 독일의 자오저우만 점령은 1897년 선교사 피살을 구실로 청나라 영토를 강탈한 사건이다. 독일은 압박을 통해 이 지역을 99년간 '조차'하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조차(租借)란 소유권은 둔 채 통치권만 기간을 정해 빌리는 제도로, 실질적인 식민 지배이다. 독일은 이곳을 동아시아 진출 기지로 삼았으며, 이는 열강들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찢어 가져가는 중국 분할의 도화선이 되었다.), 의화단 사건을 전후한 러시아의 만주 점령(러시아의 만주 점령은 1900년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러시아 제국이 대군을 파병해 만주 전역을 무력 장악한 사건이다.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러시아는 자국 철도 보호를 명분 삼아 군대를 물리치지 않고 영구 점령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던 영국, 미국, 일본의 거센 반발을 샀으며, 결국 영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고 맞서면서 훗날 러일전쟁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파쇼다 사건(1898, 아프리카 분할을 두고 영국의 종단 정책과 프랑스의 횡단 정책이 수단에서 충돌한 사건.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으나 국력 소모를 꺼린 프랑스의 양보로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국은 대립을 끝내고 협력 관계로 돌아섰으며, 훗날 독일에 맞서는 영프협상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1895~1896, 이탈리아의 침략을 에티오피아가 자력으로 물리치고 독립을 지켜낸 전쟁. 에티오피아군은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을 대파하여 완전한 주권을 인정받았다. 이는 제국주의 침략기 아프리카 국가가 유럽 열강을 상대로 승리해 주권을 수호한 드문 사례이다.)을 가리킨다. 아비시니아는 에티오피아의 옛 외칭(外稱, 외부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파쇼다에서는 프랑스가 영국과 대치한 뒤 철수했으므로 본문의 ‘진출’을 영구적 정복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2

 

애국심과 측은지심·동정심 (愛国心と惻隠同情)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주저 없이 달려가 구하려 할 것이라는 맹자의 말은 참되다.¹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 아이를 구하는 공감, 측은히 여기는 마음, 남을 돕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면, 애국심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순수하여 사사로운 구석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참으로 고결한 연민과 자선은 나와의 거리나 친소를 따지지 않는다. 다급한 아이를 구할 때 내 아이인지 남의 아이인지를 묻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세계 여러 나라의 어질고 의로운 이들은 트란스발의 승리와 재기를 빌고, 필리핀의 성공과 독립을 빌었다. 적국인 영국의 사람 중에도 그런 이가 있고, 적국인 미국의 사람 중에도 그런 이가 있다. 이른바 애국심으로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애국자와 국가주의자들은 트란스발을 위해 기도하는 영국인을 애국심 없는 자라고 욕할 것이다. 필리핀을 위해 기도하는 미국인도 애국심 없는 자라고 욕할 것이다. 그렇다. 그들에게 애국심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결한 공감과 연민과 자선의 마음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애국심은 저 아이를 구하는 사람의 마음과 같지 않은 듯하다.

나는 이른바 애국심이 순수한 공감과 연민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프다. 애국심이 사랑하는 대상은 자기 나라의 땅에 한정되고 자기 나라 사람에게 한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사랑하지 않고 자기 나라만 사랑하는 사람은, 남은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이다. 겉치레의 명예를 사랑하고 이익을 독차지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사롭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망향심 (望郷心)


애국심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도 닮았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귀하게 여길 만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몹시 비천한 면도 있다.

 

 

타향에 대한 증오 (他郷に対する憎悪)


머리를 늘어뜨린 어린 시절, 죽마를 타고 놀 때 누가 고향의 산과 물을 참으로 사랑할 줄 알았겠는가.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낯선 지방과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가 아닌가. 이곳저곳 떠돌며 젊은 뜻이 번번이 꺾이고 인심의 냉혹함을 절감할 때, 사람은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익숙한 고향을 간절히 그린다. 기후와 풍토가 몸에 맞지 않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며, 뜻을 나눌 벗도 없고 시름을 위로할 부모와 처자도 없을 때 고향 생각은 더욱 깊어진다. 고향 자체가 사랑스럽고 소중해서라기보다 타향이 싫고 괴롭기 때문이다. 고향을 향한 순수한 공감과 연민이 아니라 타향에 대한 미움인 것이다. 실의와 역경에 빠진 사람은 대개 그렇다. 타향을 미워하지 않았다면 유난히 고향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실의와 역경 속의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뜻을 이루고 잘 사는 사람에게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분명히 있다. 그런데 뜻을 이룬 사람이 고향을 그리는 속마음에는 더욱 비천한 것이 있다. 고향의 어른과 아는 이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고향을 향한 공감과 연민이 아니라 개인의 허영이요 자랑이요 경쟁심이다. 옛사람은 ‘부귀를 누리면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했다.¹¹ 이 한마디가 그들의 가슴속에 숨은 비천한 비밀을 환히 밝혀주지 않는가.

대학을 우리 지방에 세우자, 철도를 우리 지방에 놓자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다. 심해지면 총무위원을 우리 현에서 내자, 대신을 우리 지방에서 내자고 한다. 자신의 이익이나 허영을 떠나 정말 고향에 대한 공감과 자비 때문에 그러는가. 사리를 아는 사람과 고결한 사람이 이를 보고 조금도 경멸하지 않을 수 있는가.

 

 

천하의 가련한 존재들 (天下の可憐虫)


애국심과 향수가 같은 원인과 동기에서 나온다면, 우나라와 예나라의 다툼은 애국자의 훌륭한 견본이요, 달팽이 뿔 위 촉씨와 만씨의 전쟁은 애국자를 보여주는 좋은 비유다.¹² 세상에 이보다 딱한 자들이 또 있는가.

 

 

허세와 허영 (虚誇虚栄)


그러니 생각해 보면 이와야 아무개가 자신을 ‘국익의 우두머리’라고 큰소리친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 황태자 혼인 기념 미술관에 천 엔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고 지키지 않았다고 웃을 일도 아니다.¹³ 세상의 이른바 애국자와 애국심은 이와야 아무개와 오십 보 백 보일 뿐이다. 애국심을 광고하는 것은 오직 자기 이익을 위해서요, 허세를 위해서요, 허영을 위해서다.

 

10. 『맹자』 「공손추 상」의 유명한 논증, 유자입정(孺子入井).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놀라 구하려는 마음은 보상이나 평판을 계산하기 전에 생긴다는 뜻이다.

11.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초나라 항우가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요충지인 함양을 버리고 고향 팽성으로 돌아가 성공을 뽐내려 하자, 신하들이 이를 만류했다. 이때 항우가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라며 고집을 부린 고사. 남에게 성공을 자랑하려다 대사를 그르친다는 뜻의 '금의야행(錦衣夜行)'과 훗날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온다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의 배경이 다.

12. 우·예의 다툼은 중국 고대의 작은 두 나라가 경계를 놓고 다투었다는 고사다. 촉씨와 만씨는 『장자』에 나오는 달팽이의 두 뿔 위 나라들이다. 저자는 사소한 집단의 이해를 절대화하는 태도를 풍자한다.

13. ‘이와야’는 담배 사업가 이와야 마쓰헤이(岩谷松平)를 가리킨다. 그는 국익과 애국을 내세운 광고로 알려졌다. 여기의 기부 약속 불이행은 저자가 제시하는 비판 사례로 옮겼다.

 

 

3

 

로마의 애국심 (羅馬の愛国心)


‘그때에는 어느 누구도 당파를 위하지 않았고, 모두가 국가를 위했다.’ 옛 로마의 시인이 자랑하고 찬미한 말이다.¹⁴ 그러나 어찌 알았겠는가. 그것은 당파를 이용할 지혜가 없었기 때문일 뿐이다.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적국과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국과 적은 미워해야 한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빈민 (羅馬の貧民)


나는 당시 로마의 가난한 농민 다수가 소수의 부자와 함께, 혹은 그들을 따라 이른바 국가를 위해 전장으로 갔음을 본다. 적과 싸울 때 그들은 용맹하게 돌진하여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몸을 돌보지 않았다. 그 충성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또 보라. 운 좋게 승리하여 몸성히 돌아왔을 때가 곧, 출정 중에 진 빚 때문에 노예의 처지로 떨어지는 때였다. 전쟁 중에도 부자의 밭은 종속민과 노예가 갈고 물을 댔지만, 가난한 이의 밭은 황폐해져 잡초가 무성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빚을 지고, 팔려가 노예가 되었다. 결국 누구를 위한 일이었는가.

그들은 로마의 적국과 적을 미워했다. 그러나 적이 그들에게 어떤 해를 끼친다 해도, 같은 나라의 부자가 끼치는 해보다 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적은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재산을 빼앗고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동포에게 바로 그런 일을 당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何らの痴呆ぞ)

부자가 싸우면 재산이 늘고 노예와 종속민이 늘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늘어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국가를 위해 싸웠다’는 말뿐이었다. 국가를 위해 싸우고 노예의 처지에 빠져서도, 적을 무찔렀다는 지난날의 허영을 되새기며 기뻐하고 만족하고 자랑한다. 아, 얼마나 어리석은가. 옛 로마의 애국심이 실로 그러했다.

 

 

그리스의 노예 (希臘の奴隷)


고대 그리스의 이른바 헤일로타이(Helot)라는 예속민을 보라.¹⁵ 일이 생기면 병사요, 일이 없으면 노예였다. 그들이 지나치게 강해지거나 인구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주인에게 살육당하곤 했다. 그런데도 주인을 위해 싸울 때에는 충성도 용기도 더할 나위 없었다. 창끝을 돌려 자유를 얻으려 한 적은 없었다.

 

 

미신적인 애국심 (迷信的愛国心)


왜 그랬는가. 외국과 외국인, 곧 그들이 적국과 적이라고 부르는 자를 미워하고 토벌하는 것을 더없는 명예와 영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허세임을 몰랐고 허영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애국심이라는 허세와 허영의 미신은, 썩은 신수를 마시는 덴리교 신자들의 미신보다도 더 단단했다.¹⁶ 그 해악도 더했다.

 

 

사랑과 증오의 두 감정 (愛憎の両念)


그들이 적을 그토록 미워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결함투성이인 인간, 아직 짐승에 가까운 인간은 모두를 한결같이 사랑할 수 없고 널리 사랑할 수도 없다. 태초 이래 사랑과 미움은 꼬인 줄처럼 서로 얽히고 사슬고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들짐승을 보라. 서로 으르렁대고 잡아먹다가도 처음 보는 상대를 만나면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두려움은 의심과 미움이 되고, 의심과 미움은 포효와 공격이 된다. 방금까지 서로 물어뜯던 동류가 도리어 뭉쳐 공동의 적에 맞선다. 공동의 적을 상대할 때 보여주는 그 친밀함은 가히 볼 만하다. 저 짐승들에게는 애국심이 있는가, 없는가. 옛 인류의 거친 생활이 여기서 얼마나 멀었겠는가.

미개인은 같은 무리끼리 뭉쳐 자연과 싸우고 다른 부족과 싸웠다. 그들에게도 이른바 애국심이 있었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그 단결과 친밀함과 공감은 적이 같았기 때문에 생겼으며, 적을 향한 증오의 반작용이었다. 같은 고통을 겪고 나서야 서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호전성은 동물적 본성이다 (好戦の心は動物的天性)


그렇다면 이른바 애국심이란 외국과 외국인을 토벌하는 것을 영예로 삼는 호전성이다. 호전성은 곧 동물적 본성이다. 이 동물적 본성, 이 호전적인 애국심은 석가와 그리스도가 물리친 것이며, 문명의 이상과 목적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슬프게도 세계의 사람들은 이 동물적 본성이 다투는 마당에서 19세기를 보내고, 다시 똑같은 처지로 20세기의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려 한다.

 

 

적자생존의 법칙 (適者生存の法則)

사회가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라 점차 진화하고 발전하여 통합된 영역과 교류의 범위가 넓어지면, 공동의 적으로 삼던 다른 부족과 다른 마을은 차츰 줄어든다. 미워할 대상도 사라진다. 미워할 대상이 없어지면 친밀하게 결합할 목적도 사라진다. 그러자 한 나라, 한 사회, 한 마을을 사랑하던 마음은 한 몸, 한 집안, 한 당파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부족과 마을 사이에 나타나던 거친 호전성은 개인 사이의 다툼, 당파 사이의 마찰, 계급 사이의 싸움으로 바뀐다. 순결한 이상과 고상한 도덕이 널리 행해지지 않는 동안, 동물적 본성을 떨쳐내지 못하는 동안, 세계의 사람들은 끝내 적을 만들고 미워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를 애국심이라 이름 붙이고 명예로운 행위라 부른다.

 

 

자유 경쟁(自由競争)

동물적 천성의 자극(動物的天性の挑撥)

아, 유럽과 미국의 19세기 문명이여. 한편에서는 치열한 자유경쟁이 사람의 마음을 갈수록 냉혹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상하고 정의로운 이상과 신념이 물결에 쓸리듯 사라진다. 문명의 앞날이 참으로 두렵지 않은가. 미봉책만 찾는 정치가, 공명을 좋아하는 모험가, 엄청난 이익을 좇는 자본가는 이를 보고 외친다. ‘국경 밖을 보라. 강적이 다가온다. 국민은 개인끼리 다투기를 그치고 국가를 위해 단결해야 한다.’ 그들은 개인 사이의 증오를 외부의 적으로 돌려 저마다 제 목적을 이루려 한다.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 비애국자요 나라의 역적이라고 꾸짖는다. 제국주의의 유행이 바로 이 수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국민의 이른바 애국심, 다시 말해 동물적 본성을 자극한 데서 나왔다는 것을 모르는가.

 

14. 인용은 영국 작가 토머스 배빙턴 매콜리의 『고대 로마의 노래』 중 「호라티우스」에 나온다. 원문은 그를 ‘고대 로마의 시인’처럼 서술하지만 매콜리는 19세기 영국인이다.

15. 헤일로타이(heilotai, 영어 helots)는 스파르타 등의 지배 아래 있던 예속 농민이다. 본문의 ‘노예’는 이 강제 예속을 강조한 말이다. 다만 저자의 ‘저항한 적이 없다’는 서술은 역사적으로 지나친 일반화다. 헤일로타이의 반란은 실제로 있었다.

16. 덴리교(천리교, 天理敎)는 19세기 일본에서 생긴 종교다. ‘썩은 신수’라는 표현은 종교적 미신을 공격하는 당시 저자의 수사이다.

 

 

4

 

서양인과 오랑캐에 대한 증오 (洋人夷狄の憎悪)


자기는 사랑하고 남은 미워해야 한다. 같은 고장 사람은 사랑하고 다른 고장 사람은 미워해야 한다. 신국과 중화는 사랑하고 서양인과 오랑캐는 미워해야 한다.¹⁷ 사랑할 사람을 위해 미워할 사람을 친다. 이것을 애국심이라 부른다.

 

 

야심을 이루는 도구 (野心を達するの利器)


그렇다면 애국주의는 가련한 미신이 아닌가. 미신이 아니라면 호전성이다. 호전성이 아니라면 허세와 허영의 광고요 상품이다. 이 주의는 늘 전제정치가가 자신의 명예와 야심을 이루는 도구와 수단으로 쓰인다.

이를 그리스와 로마의 옛이야기로만 여기지 말라. 애국주의가 유행하고 이용되는 정도는 근대에 들어 고대나 중세보다 오히려 심해졌다.

 

 

메이지 성대의 애국심 (明治聖代の愛国心)

생각해 보라. 고 모리타 시켄이 글을 써 황해의 이른바 영험한 매는 영험한 것이 아니라고 하자 세상은 모두 그를 나라의 역적이라고 몰았다. 구메 구니타케가 신도는 하늘에 제사 지내던 옛 풍속이라고 논하자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사이온지 후작이 이른바 세계주의적 교육을 시행하려 하자 문부대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우치무라 간조가 교육칙어에 대한 예배를 거부하자 교직에서 쫓겨났다. 오자키 유키오가 ‘공화’라는 두 글자를 입에 올리자 대신직에서 쫓겨났다.¹⁸ 모두 커다란 불경을 저질렀다고 비난받고 애국심이 없다는 죄를 뒤집어썼다. 이것이 메이지의 성스러운 치세에 일본 국민의 애국심이 드러난 모습이다.

국민의 애국심은 자기 뜻에 어긋나기만 하면 사람의 입을 막고 팔을 붙잡는다. 사상까지 묶고 신앙에도 간섭한다. 역사를 논평하는 일을 금지하고 성서를 연구하는 일을 방해하며, 온갖 학문을 무너뜨릴 수 있다. 문명의 도의는 이를 수치로 여기지만 애국심은 이를 영예와 공명으로 여긴다.

 

 

영국의 애국심 (英国の愛国心)

일본의 애국심만 그러한가. 영국은 근대에 가장 자유로운 나라, 박애의 나라, 평화의 나라라고 불린다. 이런 영국조차 애국심이 격렬해졌을 때에는 자유를 외치는 이, 개혁을 청원하는 이, 보통선거를 주장하는 이 모두를 반역자로 몰고 나라의 역적이라고 꾸짖지 않았는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英仏戦争)


영국인의 애국심이 크게 고양된 가까운 사례로는 프랑스와 전쟁하던 때만 한 것이 없다. 이 전쟁은 프랑스혁명기의 1793년에 시작하여 중간에 얼마간 중단되기도 했으나,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할 때 비로소 크게 일단락되었다. 시대가 가까운 만큼 당시의 생각도 오늘의 생각과 멀지 않다. 그들의 애국심이 유행한 사정과 방식은 오늘의 애국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거국일치 (いわゆる挙国一致)


프랑스와의 전쟁. 오직 이 사실, 이 한마디뿐이었다. 원인을 묻지 말라. 결과를 논하지 말라. 이익과 손해를 말하지 말라.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 입을 열면 반드시 애국심 없는 자로 몰린다. 개혁 정신도 저항의 마음도 비판의 생각도 한때 완전히 멎었다. 아니, 멎게 만들었다. 국내의 당파 간 다툼도 거의 사라졌다. 콜리지 같은 이마저 전쟁 초기에는 반대했으면서, 끝내 전쟁이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고 신에게 감사했다. 폭스 일파는 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굽히지 않고 의회의 대세를 돌릴 수 없음을 알자 회의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 이들이 있었지만 의사당에서는 당파 간 토론이 자취를 감추었다.¹⁹ 아, 당시의 영국은 참으로 거국일치였다. 일본의 정치가와 책사들이 즐겨 입에 올리는 바로 그 ‘거국일치’였다. 로마의 시인이 말한 것처럼 ‘오직 국가만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때 영국 국민 전체의 가슴속에 무슨 이상이 있었는가. 무슨 도의가 있었는가. 무슨 공감이, 무슨 ‘국가’가 있었는가.

온 영국 국민, 광기에 빠진 온 국민에게 있던 것은 프랑스에 대한 증오뿐이었다. 혁명에 대한 증오뿐이었고 나폴레옹에 대한 증오뿐이었다. 혁명 정신이나 프랑스인의 이상과 털끝만큼이라도 관련된 생각이 있으면, 싫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다투어 모욕했다. 모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떼 지어 공격하며 처벌하는 데 온 힘을 쏟지 않았는가.

 

 

죄악의 최고조 (罪悪の最高潮)

여기서 알 수 있다. 대외적인 애국주의가 최고조에 이른다는 것은 국내의 죄악도 최고조에 이른다는 뜻이다. 애국주의에 미친 이들은 전쟁 중 크게 솟구친 애국심이 전쟁 뒤에는 어떤 모습을 드러내는지 보아야 한다.

 

 

전쟁 후의 영국 (戦後の英国)

전쟁 뒤 영국에서는 프랑스를 미워하던 열기가 차츰 식는 것과 함께 군비 지출이 멎었다. 전쟁 중 대륙 여러 나라의 산업이 혼란에 빠져 영국에 유난히 몰렸던 수요도 멎었다. 영국의 공업과 농업은 갑자기 커다란 불황을 맞았다. 이어 하층의 대다수 사람에게 궁핍과 굶주림이 닥쳤다. 그때 부호와 자본가에게 애국심이 한 점이라도 남아 있었는가. 자비와 공감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었는가. 온 나라가 하나로 뭉쳐 화목하던 마음이 남아 있었는가. 그들은 동포가 굶주려 구덩이에 쓰러지는 것을 원수 보듯 하지 않았는가. 하층 빈민을 미워하는 마음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에 대한 증오보다 훨씬 더하지 않았는가.

 

 

피털루 (ペートルロー)

피털루 사건에 이르면 이를 갈지 않을 수 없다.²⁰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군대를 무너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의회 개혁을 요구하며 세인트피터스필드에 모인 수많은 노동자를 짓밟고 학살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워털루 전투에 빗대어 비꼬며 피털루라 부른 사건이 이것이다. 워털루에서 적군을 무찌른 애국자들이 이제 방향을 돌려 피털루에서 자기 동포를 학살한다. 애국심은 정말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인가. 하나로 뭉쳤다는 애국심은 전쟁이 끝난 뒤 국가와 국민에게 무슨 이익을 주는가. 보라. 적의 머리를 부순 날카로운 칼끝이 곧바로 동포의 피를 맛보려 한다.

 

 

얼마나 허위인가 (虚偽なるかな)

콜리지는 전쟁이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신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이제 그 일치는 어디 있는가. 증오는 증오를 낳을 뿐이다. 적국을 미워하는 마음은 곧 자국민을 미워하는 동물적 본성일 뿐이다. 워털루의 마음은 그대로 피털루의 마음이다. 애국심으로 맺은 결합이란 얼마나 거짓된가.

 

17. 신국은 일본을 신들의 나라로 보는 관념, 중화는 중국을 문명의 중심으로 보는 관념이다. 원문은 두 관념이 타자를 낮춰 부르는 말과 짝을 이루는 방식을 비판한다.

18. 청일전쟁의 ‘영험한 매’ 이야기 비판, 구메 구니타케 필화 사건(1892), 사이온지 긴모치의 교육정책을 둘러싼 논란, 우치무라 간조 불경 사건(1891), 오자키 유키오의 공화 연설 사건(1898)을 묶어 든 것이다. 교육칙어에 대한 예배란 칙어와 천황의 서명에 요구된 경례를 종교적 복종으로 문제 삼은 표현이다.

19.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영국 시인, 찰스 제임스 폭스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반대한 휘그당 정치가다. 본문은 전쟁 아래 정치적 비판이 봉쇄되는 양상을 대비한다.

20. 이른바 피털루 학살. 1819년 8월 16일 맨체스터 세인트피터스필드에서 의회 개혁을 요구하던 군중을 기병대가 공격한 사건이다. ‘피털루’는 장소 이름과 1815년 워털루 전투를 결합한 풍자적 명칭이다. 본문이 두 사건을 연결하는 것은 애국적 군사력과 국내 억압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5

 

눈을 독일로 돌려보라 (眼を独逸に一転せよ)


영국을 잠시 떠나 독일로 눈을 돌려보자. 고 비스마르크 공은 참으로 애국심의 화신이요, 독일제국은 애국의 신이 현현한 성지다. 애국교의 영험함이 얼마나 찬란한지 알고 싶다면 이 성지를 한번 찾아가야 한다.

일본의 귀족·군인·학자를 비롯하여 세계의 애국주의자와 제국주의자들이 기뻐하며 우러러 마지않는 독일의 애국심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근대 영국의 애국심과 달리 정말 미신이 아니며 허세와 허영이 아닌가.

 

 

비스마르크 공 (ビスマーク公)

비스마르크는 실로 한 시대를 압도한 인물이었다. 그가 나서기 전 북독일의 여러 나라는 어지러이 갈라져 있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국민은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고 보는 제국주의자의 눈에는 참으로 딱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나라들을 두드려 하나로 만든 비스마르크의 큰 사업은 오래도록 빛을 발했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이 여러 나라를 결합하고 통일하려는 목적은 반드시 그 나라들의 실제 평화와 이익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군사상의 필요에서 나왔을 뿐이다.

일찍부터 자유와 평등의 이치를 이해하고 프랑스혁명의 장관을 부러워했던 사람 가운데에는, 사소한 나라끼리 다투기를 그치고 협동과 평화의 복리를 누리며 외적의 침입에도 대비하기 위해 독일의 결합과 통일을 바라던 이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 바람은 훌륭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가 그 바람을 따라주지 않은 것을 어찌하랴.

 

 

게르만 통일 (日耳曼統一)

독일 통일이 정말 북독일 여러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다면, 왜 주민 다수가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와는 결합하지 않았는가. 까닭은 간단하다. 비스마르크 일파의 이상은 독일인 전체의 형제애에 있지 않았고, 여러 나라가 함께 누릴 평화와 복리에 있지 않았다. 오로지 프로이센 자신의 권세와 영광에 있었다.

 

 

불필요한 전쟁 (無用の戦争)

호전성을 충족할 수단으로 결합과 제휴를 구하는 것은 흔한 인간의 성정이다. 갑의 벗이 되는 것은 을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저쪽을 사랑하는 것은 이쪽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외국 문제에 마음을 쓰는 것은 그 안녕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패권을 뽐내고 싶기 때문이다. 영민한 비스마르크는 인간의 이런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국민의 동물적 본성을 이용해 수완을 부렸다. 다시 말해 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기려고 적국과 싸웠다. 자신에게 맞서는 온갖 주장과 비판을 눌러버리고 원하는 애국교를 세우려고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켰다.

독일의 통일자, 짐승의 힘을 전하는 사도, 철혈정책의 창시자는 치밀한 계략의 첫걸음으로 가장 약한 이웃 나라와 제멋대로 싸웠다. 승리를 거두자 국민 중에서 미신과 허영과 야수의 힘을 좋아하는 이들이 앞다투어 그의 편이 되었다. 이것이 새 독일제국 결합의 출발이요 새 독일 애국주의의 출발이었다.²¹

두 번째로 그는 다른 이웃 나라에 도전했다. 이 나라는 앞의 나라보다 강했다. 그러나 그는 상대의 준비가 미처 끝나지 않은 틈을 탔다. 이 새로운 전장에서 이른바 애국심과 결합의 정신이 솟아올랐다. 그 운동은 오직 비스마르크 자신의 나라인 프로이센과 그 국왕의 세력을 넓히는 데 교묘히 이용되고 지휘되었다.

 

 

프로이센이라는 존재 (普魯西という一物)

그는 순수한 정의의 뜻에서 북독일 통일을 꾀한 것이 아니었다. 프로이센이라는 존재가 결합 속에 녹아 없어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허용한 것은 프로이센 왕국이 맹주가 되는 통일뿐이었고, 프로이센 왕에게 독일 황제의 영광을 씌워주는 통일뿐이었다. 누가 북독일 통일을 국민적 운동이라 하는가. 허세와 미신에서 나온 국민의 애국심이 한 사람의 야심과 공명에 온전히 이용된 것이 아닌가.

 

 

중세 시대의 이상 (中古時代の理想)

비스마르크의 이상은 실로 중세 미개인의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낡고 야만적인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사회 다수가 도덕과 심리에서 아직 중세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수 국민의 도덕은 여전히 중세의 도덕이요, 심성은 여전히 미개한 심성이다. 다만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기 위해 근대 과학의 겉껍질로 덮었을 뿐이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普仏戦争)


그는 쓸모없는 전쟁을 두 차례 일으켜 성공했다. 그리고 세 번째 전쟁을 일으키려고 부지런히 힘을 기르며 기회를 노렸다. 기회가 왔다. 그는 다시 다른 강국의 준비가 끝나지 않은 틈을 탔다. 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대전쟁이여. 위험한 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흉기 중에서도 가장 흉한 일이었으나, 비스마르크에게는 대성공이었다.

보불전쟁은 북독일 여러 나라를 프로이센의 발아래 꿇렸고, 일제히 프로이센 국왕을 독일 황제로 받들게 했다. 오직 프로이센 국왕을 위한 일이었다. 비스마르크의 눈에는 그것뿐이었다. 동맹국 국민의 복리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단언한다. 독일의 결합은 정의로운 호의와 공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독일 국민이 시체의 산을 넘고 피의 강을 건너며, 거위처럼 들짐승처럼 통일을 이룬 것은 적국에 대한 증오가 부추겨졌기 때문일 뿐이다. 우리가 이겼다는 허영에 취했기 때문일 뿐이다. 이것이 대인과 군자가 함께할 일인가.

그런데도 다수 국민은 자랑한다. ‘우리 독일 국민이 하늘의 총애를 받는 데 어느 나라가 미칠 수 있겠는가.’ 다른 나라의 다수 국민도 놀라 찬탄한다. ‘위대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이래야 한다.’ 일본의 대훈위 후작도 기뻐하며 말한다. ‘나도 동양의 비스마르크가 되겠다.’²² 영국의 입헌정치가 세계에서 누리던 영광은 순식간에 떠나 프로이센 군대의 칼끝으로 옮겨갔다.

 

 

애국적 브랜디 (愛国的ブランデー)


국민이 국위와 국광의 허영에 취하는 것은 개인이 브랜디에 취하는 것과 같다. 취하면 귀가 달아오르고 눈이 흐려져 공연히 기세가 오른다. 시체의 산을 넘어도 참혹함을 보지 못하고 피의 강을 건너도 더러움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우쭐하여 득의양양하다.

 

 

유술가와 역사 (柔ら術家と力士)


군사력이 뛰어나 싸움을 잘한다는 명성을 얻는 것은 유술가가 비전의 기술을 모두 전수받거나 스모 선수가 요코즈나가 되는 것과 같다. 유술가와 스모 선수는 상대를 쓰러뜨릴 뿐, 기술은 거기서 그친다. 상대가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고 무슨 명예가 있는가. 독일 국민이 자랑하는 것도 적국을 깨뜨리는 일뿐이다. 적국이 없다면 무슨 이익과 명예가 있겠는가.

유술가와 스모 선수가 브랜디에 취해 기술과 힘을 뽐내는 것을 보고, 그들의 재능과 학식과 덕행까지 믿을 수 있는가. 국민이 전쟁의 허영에 취해 명예와 공적을 자랑하는 것을 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들이 정치·경제·교육에서 문명의 복리를 가져다주리라고 믿을 수 있는가. 독일 철학은 존중할 만하고 독일 문학도 존중할 만하다. 그러나 독일의 이른바 애국심을 나는 결코 찬양할 수 없다.

 

 

현 독일 황제 (独逸現皇帝)

비스마르크가 보좌했던 황제도, 비스마르크 자신도 이미 지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철혈주의는 여전히 현 황제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애국의 브랜디는 여전히 그를 취하게 한다.²³ 전쟁을 좋아하고 억압을 좋아하고 헛된 명성을 좋아하는 정도는 나폴레옹 1세를 훨씬 넘고, 나폴레옹 3세보다도 한참 더하다. 거대한 국민 집단은 피로 사들인 결합과 통일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지금까지도 이 젊은 압제자의 부림을 달게 받고 있다. 이른바 애국심도 아직 기승을 부린다. 그러나 이 현상이 어찌 영원하겠는가.

 

 

근대 사회주의 (近世社会主義)


보라. 애국심의 해악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 맥베스의 폭정이 극에 달했을 때 숲이 움직여 다가왔듯이, 무서운 강적이 이미 먼지를 일으키며 밀려오고 있지 않은가.²⁴ 이 강적은 미신적이지 않고 이성적이며, 중세적이지 않고 근대적이며, 광란하지 않고 조직적이다. 그 목적은 저 애국교와 애국교가 벌여놓은 사업을 모두 무너뜨리는 데 있다. 이를 근대 사회주의라 부른다.

고대의 거칠고 광란하는 애국주의가 근대 문명의 높은 도의와 이상을 앞으로도 비스마르크 시대처럼 짓누를 수 있을지는 이 세기 중엽에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러나 독일 사회주의가 힘차게 일어나 애국주의에 격렬히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전승의 허영과 적국에 대한 증오에서 생긴 애국심이 국민 서로의 공감과 박애에는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철학적인 국민 (哲学的国民)


아, 지극히 철학적인 국민에게 온갖 정치적 이상 가운데 가장 비철학적인 일을 연출하게 만든 것이 비스마르크의 큰 죄다. 비스마르크가 없었다면 독일 뿐 아니라 독일을 본보기 삼은 유럽 여러 나라의 문학·미술·철학·도덕은 얼마나 진보하고 고상해졌겠는가. 어찌 이 20세기까지 서로 물어뜯는 승냥이와 이리의 모습을 남겼겠는가.

 

21. 이어지는 세 전쟁은 덴마크 전쟁(1864),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 보불전쟁(1870~1871)이다. 이 전쟁들을 통해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다. ‘같은 언어’와 ‘형제애’는 당시의 민족주의 명분을 가리킨다.

22. 문맥상 독일식 헌정과 국가 건설을 추진한 이토 히로부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이름을 직접 쓰지 않은 원문의 표현은 그대로 두었다.

23. 현 황제는 빌헬름 2세, 비스마르크가 보좌했던 황제는 빌헬름 1세다. ‘애국의 브랜디’는 집단적 도취를 빗댄 저자의 풍자다.

24.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적군이 나뭇가지를 들고 접근하여 버넘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독일 사회주의의 성장에 비유했다.

 

 

6

 

일본의 황제 (日本の皇帝)

일본 황제는 독일의 젊은 황제와 다르다. 전쟁을 즐기지 않고 평화를 중히 여기시며, 억압을 즐기지 않고 자유를 중히 여기신다. 한 나라를 위해 야만적인 허영을 기뻐하지 않고 세계를 위해 문명의 복리를 바라신다. 지금 말하는 애국주의자나 제국주의자는 결코 아니신 듯하다.²⁵ 그러나 우리 일본 국민 중에서는 이른바 애국자가 아닌 사람이 새벽별처럼 드물다.

나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오직 적을 미워하고 토벌할 때에만 고양되는 애국주의를 단연 찬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본 사람들의 애국심도 물리치지 않을 수 없다.

 

 

고(故) 고토 백작 (故後藤伯)

고 고토 백작은 일본 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기려고 국가가 ‘위급존망’의 때에 놓였다고 외친 적이 있다. 세상의 애국지사들은 바람에 풀이 눕듯 일제히 그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백작은 느닷없이 조정의 벼슬길로 들어갔다. 대동단결은 봄꿈처럼 사라졌다.²⁶ 당시 일본인의 애국심이란 실은 백작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는가.

아니다. 고토 백작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번벌 정부를 미워했기 때문이다. 그 애국심은 증오였다. 같은 배에서 풍랑을 만나면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도 형제가 된다. 이런 형제 관계에 무엇을 찬탄할 것이 있는가.

 

 

청나라 정벌 전쟁 (征清の役)

일본인의 애국심은 청나라를 정벌하는 전쟁에 이르러 일찍이 없던 격렬한 분출을 보였다. 청나라 사람을 업신여기고 질시하고 증오하는 모습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흰머리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청나라의 4억 생명을 모조리 죽인 뒤에야 만족할 듯했다. 마음을 비우고 떠올려보라. 광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굶주린 호랑이의 마음 같지 않은가. 그렇다. 들짐승과 같지 않은가.

 

 

짐승 같은 힘의 우월 (獣力の卓越)


정말 일본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바라는 참된 공감과 연민 때문에 그랬는가. 아니다. 적을 많이 죽이는 것이 즐거웠고, 적의 재물을 많이 빼앗고 땅을 많이 떼어내는 것이 즐거웠을 뿐이다. 우리의 짐승 같은 힘이 얼마나 뛰어난지 세계에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황제께서 군대를 보내신 뜻은 옛말에 이르는 ‘형과 서를 치고 융과 적을 징계한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²⁷ 참으로 세계의 평화와 인도와 정의를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로 인해 부추겨진 애국심의 본질은 증오요 경멸이요 허세였다. 전쟁의 성과로 국민 전체에게 유형·무형의 이익을 어떻게 줄 것인지에는 생각이 털끝만큼도 미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모래와 자갈을 섞은 통조림 (砂礫を混ずるの鑵詰)


한편으로 위문 사업에 오백 엔, 천 엔을 내놓는 부호가 다른 한편으로는 모래와 자갈을 섞은 통조림을 병사에게 판다. 한편으로 죽음을 각오했다고 말하는 군인이 다른 한편으로는 상인의 뇌물을 헤아릴 수 없이 받는다. 이것을 애국심이라 부른다. 이상할 일도 아니다. 야수처럼 죽이고 해치는 본성이 극도의 광기에 이르면 수많은 죄악이 벌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이것이 어찌 황제의 뜻이겠는가.

 

 

일본의 군인 (日本の軍人)


일본 군인에게 군주를 받들고 충성하는 마음이 풍부한 것은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그 충성이 문명의 진보와 복리의 증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 황제를 위하여 (我皇上のため)

의화단 사건 때 다구에서 톈진으로 가는 길이 험해 일본군이 몹시 고생했다. 한 병사가 울며 말했다. ‘황제 폐하를 위한 일이 아니라면 이런 고통을 참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듣는 이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를 위해 운다.²⁸

가련한 병사여. 나는 그가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고 하고 ‘정의를 위해서, 인도를 위해서, 동포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다고 꾸짖지는 않겠다. 그는 평소 가정과 학교와 병영에서 자기 몸을 오직 황제에게 바쳐야 한다고 배우고 명령받아, 다른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의 예속민도 자유가 있는 줄, 권리가 있는 줄, 행복이 있는 줄 몰랐다. 주인을 위해 부림 당하고 매를 맞으며 전장에 나가 죽었다. 전장에서 죽지 않으면 주인에게 살육당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국가를 위해서라고 자랑했다. 나는 역사를 읽으며 늘 그들을 위해 울었다. 지금 같은 마음으로 우리 병사를 위해 운다.

그러나 지금은 스파르타 시대가 아니다. 황제께서는 자유와 평화와 인도를 중히 여기신다. 어찌 신민이 헤일로타이가 되기를 바라시겠는가. 나는 믿는다. 우리 병사가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는 말에서 더 나아가 ‘인도와 정의를 위해서’라고 말하게 한다면, 황제께서도 기꺼이 받아들이실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군주를 받드는 충의의 목적에 부합할 것이다.

 

 

효녀인 매춘부 (孝子的娼婦)

부모와 형제의 곤궁을 구하려 도둑질하는 사람이 있고, 성을 파는 여성이 있다. 몸을 위태롭게 하고 이름을 더럽혀 끝내 부모와 형제와 집안에까지 누를 끼친다. 중세 이전에는 이를 찬양했다. 그러나 문명의 도덕은 그 사정을 슬퍼하고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길지언정 잘못된 행위 자체를 용서하지 않는다.²⁹ 충성하는 마음은 좋다. 황제를 위한 마음도 좋다. 그러나 정의와 인도는 내가 알 바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야만적인 애국심이요 미신적인 충성이다. 저 효성스러운 성매매 여성이나 도둑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슬프다. 우리 군인의 충성과 애국심이 아직도 문명의 고상한 이상에 어긋나며, 중세 이전의 사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데가 있다는 것이 슬프다.

 

 

군인과 종군기자 (軍人と従軍記者)

그들의 충성과 애국심이 왕성한 데 비해 동포와 인류를 위한 공감은 전혀 없다는 사실은 신문기자를 대하는 일 하나로도 알 수 있다. 북중국 출병 때 그들이 종군기자를 대하는 태도는 냉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자에게 먹을 것이 없어도, 묵을 곳이 없어도, 병이 나도, 생명이 위험해도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하인처럼, 적처럼 비웃고 욕하고 꾸짖었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 싸운다고 한다. 종군기자도 우리 국가의 한 사람, 우리 동포의 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돌보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그토록 없는가. 그들이 말하는 국가에는 황제와 군인 자신만 있을 뿐, 그 밖의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4천만 국민은 목을 빼고 우리 군의 안위를 알고 싶어 하며, 발돋움해 승패 소식을 기다린다. 종군기자가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생사의 길을 넘나드는 것이 어찌 신문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서만이겠는가. 4천만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채워주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군인은 기자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긴다. 4천만 국민을 향한 공감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안중에 국민이 없다 (眼中国民なし)

봉건시대의 무사는 국가를 무사의 국가로, 정치를 무사의 정치로 여겼다. 농민·장인·상인은 거기에 참여할 권리도 의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군인도 국가를 황제와 군인의 국가로 여긴다.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눈에 군인 이외의 국민이 보이겠는가. 그러므로 알 수 있다. 애국심의 고양은 적을 향한 증오를 더할 뿐, 동포를 향한 애정을 더해주지 않는다.

 

 

애국심을 고양의 결과 (愛国心発揚の結果)


국민의 고혈을 짜내 군비를 늘리고, 생산에 쓰일 자본을 흩어 비생산적으로 소모하며, 물가를 끌어올려 수입 초과를 낳는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라고 한다. 애국심을 드높인 결과가 참으로 믿음직하다.

적을 많이 죽이고 적의 땅과 재산을 많이 차지했건만, 정부의 한 해 지출은 그 때문에 도리어 두 배, 세 배가 된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라고 한다. 애국심을 드높인 결과가 참으로 믿음직하다.

 

25. 메이지 천황을 평화·자유·인도의 수호자로 묘사하는 원문의 논법을 그대로 옮겼다. 천황을 높이는 표현과 군국주의 비판이 공존하는 것은 이 저술의 역사적 특징이다. 이 표현을 후대 아나키즘의 국가·군주제 비판으로 바꾸어 번역하지 않았다.

26. 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郞)가 주도한 반정부 대동단결운동과 1889년 그의 입각을 가리킨다. 번벌 정부는 사쓰마·조슈 등 옛 번 출신 세력이 주도하던 메이지 정부다.

27. 『시경』의 ‘荊舒是懲, 戎狄是膺’ 계열 표현을 이용한 정벌의 고사다. 형·서(荊舒)는 고대 중국에서 초(楚)나라 중심의 남방 지역(형)과 안휘성 일대의 소국 및 부족 집단(서)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형'은 현재의 호북·호남성 일대의 초나라 세력을, '서'는 동이 계열의 여러 소국인 '군서(群舒)'를 뜻한다. 중원 왕조는 이들을 남방의 특정 지역이나 대립하는 이민족 세력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융·적(戎狄)은 고대 중국 주나라 체제에서 중원의 화하족(한족)이 서쪽과 북쪽의 이민족을 낮추어 부른 말이다. 중원 왕조는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중화)으로 여기고 사방의 이민족을 '사이(四夷)'라 비하했는데, 융(戎)은 서쪽의 이민족(서융)을, 적(狄)은 북쪽의 이민족(북적)을 뜻한다. 참고로 동쪽은 이(夷), 남쪽은 만(蠻)이라 불렀다. 원문의 정벌 논리를 드러내기 위해 음을 남겼다.

28. 의화단 사건 때 일본은 1900년 열강 연합군의 중국 출병에 참여했다. 다구는 톈진의 바다 쪽 관문이다. 원문은 의화단을 ‘단비’라 부르지만, 여기서는 독자가 식별하기 쉬운 사건명을 썼다.

29.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동기가 행위의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유다. 성매매 여성을 비난하는 도덕적 표현은 당시 저자의 관점이며, 역자의 판단을 덧붙인 것이 아니다.

 


7

 

애국심의 실상이 이와 같다 (愛国心の物たるかくの如し)


이상에서 이른바 패트리어티즘, 곧 애국주의 또는 애국심이 무엇인지 대강 밝혀졌다고 믿는다. 그것은 야수적 본성이다. 미신이다. 광열이다. 허세다. 호전성이다. 실로 그런 것이다.

 

 

인류가 진보하는 까닭 (人類の進歩あるゆえん)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생각해 보라. 자연에서 생겨나는 온갖 해악을 막아내는 것이 바로 인류가 진보하는 까닭이 아닌가.

물이 오래 고여 움직이지 않으면 썩는다. 이것은 자연의 일이다. 물을 흐르게 하고 통하게 하여 썩지 않도록 하면 자연을 거스른다고 꾸짖겠는가. 사람이 늙고 병드는 것은 자연의 일이다. 약을 쓰면 자연을 거스른다고 꾸짖겠는가. 새와 짐승, 물고기와 조개, 풀과 나무는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자연에 맡긴다. 진화하거나 퇴보하는 것 역시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에 맡길 뿐이다. 사람이 자연을 따르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긴다면 그는 곧 새와 짐승, 물고기와 조개, 풀과 나무일뿐, 어찌 사람이겠는가.

인간은 스스로 힘써 자연의 폐해를 바로잡기 때문에 진보한다. 타고난 욕정을 가장 많이 억제한 사람들은 도덕이 가장 많이 진보한 사람들이며, 자연물에 가장 많이 인공을 가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가장 많이 진보한 사람들이다. 문명의 복리를 누리려면 자연에 무조건 순종해서는 안 된다.

 

 

진보의 큰길 (進歩の大道)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미신을 버리고 지식으로, 광열을 버리고 이성으로, 허세를 버리고 진실로, 전쟁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고 박애로 나아가는 것이 인류 진보의 큰길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야수적 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 말하는 애국심에 끌려다니는 국민은 품성이 비루하고 저열하다. 결코 고상한 문명국민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정치와 교육과 상공업을 애국심의 희생물로 만들려는 자는 문명의 도적이요 진보의 적이며 세계 인류의 죄인이다. 그들은 19세기 중엽에 한 차례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난 수많은 사람을 그릇된 애국심의 이름 아래 다시 노예로 떨어뜨릴 뿐 아니라, 한술 더 떠 짐승의 처지에까지 밀어 넣으려 한다.

 

 

문명의 정의와 인도 (文明の正義人道)


그러므로 나는 단언한다. 문명세계의 정의와 인도는 애국심이 날뛰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남김없이 걷어내야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미워할 애국심이 이제 군국주의로, 제국주의로 나타나 온 세계에 퍼지고 있으니. 다음에는 더 나아가 군국주의가 세계의 문명을 어떻게 해치고 인류의 행복을 어떻게 가로막는지 살펴보겠다.

 


제3장 군국주의를 논한다 (第三章 軍国主義を論ず)

1

 

군국주의의 세력 (軍国主義の勢力)

지금 군국주의의 세력은 전례 없이 강해져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여러 나라가 군비 확장에 쏟아붓는 정력과 소모하는 재력은 헤아릴 수 없다. 군비가 그저 통상적인 외침이나 내란을 막는 수단이라면 어찌 이토록 심해야 하는가. 온 나라의 유형·무형 자원을 군비 확장의 희생물로 다 바치면서도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원인과 목적은, 방어와 보호 이외의 곳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군비 확장의 원인 (軍備拡張の因由)


그렇다. 군비 확장을 재촉하는 원인은 따로 있다. 일종의 광열, 허세, 호전적인 애국심이다. 물론 군인이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여 계략을 부리는 경우도 있고, 무기·식량 등 군수품을 공급하는 자본가가 단번에 거액을 움켜쥐려는 경우도 있다. 영국과 독일 등의 군비 확장에는 특히 이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군인과 자본가가 마음껏 야심을 펼칠 수 있었던 까닭은, 다수 인민의 허세에 찬 호전적 애국심이 솟아오르는 기회를 탔기 때문이다.

갑국 사람은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바라지만 을국 사람이 침략의 야망을 품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을국 사람도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바라지만 갑국 사람이 침략의 야망을 품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나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우스워 밥을 뿜을 지경이다.

 

 

오월 인형과 삼월 히나 인형 (五月人形三月雛)

이리하여 각국 국민은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단오 인형과 삼월의 히나 인형을 놓고 예쁨과 개수를 뽐내듯이, 무장의 정예함과 전함의 수를 다툰다.³⁰ 그저 서로 경쟁할 뿐, 반드시 적국의 침입이 다급하다고 믿는 것도 아니요 해외 원정이 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닌 듯하다.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무서운 참사가 자라나는 것을 어찌하랴.

 

 

몰트케 장군 (モルトケ将軍)

고 몰트케 장군은 ‘세계 평화를 바라는 것은 꿈일 뿐이며, 그 꿈조차 아름답지 않다’고 했다.³¹ 그렇다. 장군에게 평화의 꿈은 추했을 것이다. 장군 자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프랑스를 이겨 배상금 50억 프랑과 알자스·로렌 두 지방을 빼앗았는데도, 프랑스 상공업은 도리어 계속 번성하고 독일 시장에는 갑자기 큰 곤경과 좌절이 닥치자 벌컥 화를 낸 일이 있다. 그것이 장군의 아름다운 꿈의 결과였다. 아름다운 꿈의 결과가 몹시 추하지 않은가.

 

 

야만인의 사회학 (蛮人の社会学)

몰트케는 다시 아름다운 무력으로 프랑스에 큰 타격을 가해, 쇠락하여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려는 계획을 여러 차례 세웠다. 무력의 승리만으로 국민의 부강을 이루려는 것이 몰트케의 정치적 수완이었다. 이런 심술을 20세기 국민의 이상으로 숭배해야 한다면, 우리는 언제 미개인의 윤리학과 사회학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

 

 

작은 몰트케들의 속출 (小モルトケの輩出)

그런데 군국주의가 전성기를 맞은 결과 몰트케는 현대의 이상이자 모형이 되었다. 작은 몰트케들이 세계 곳곳에서 비 온 뒤 봄풀처럼 돋아난다.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도 작은 몰트케들이 뽐내며 활보한다.

그들은 군비 제한을 제창한 니콜라이 2세를 몽상가라고 비웃고 평화회의를 우스운 일이라고 욕한다. 늘 평화를 바란다고 말하는 바로 그 혀로 군비는 아름다운 것이며 전쟁은 필요하다고 외친다. 그 모순을 일단 따지지는 않겠다. 사회에 군비와 전쟁이 필요하다는 까닭부터 들어보자.

 

30. 일본의 5월 단오에는 무사 인형 등을, 3월 히나마쓰리에는 인형들을 장식한다. 원문은 이를 아이들의 경쟁에 빗대어 군비경쟁을 조롱한다.

31. 헬무트 폰 몰트케(대몰트케, 1800~1891)는 프로이센·독일의 군인으로 보불전쟁을 지휘했다. 뒤의 ‘작은 몰트케’는 그를 모방하는 군국주의자들이라는 뜻이다.

 


2

 

머핸 대령 (マハン大佐)

요즘 군사 문제에 밝기로 이름난 사람 가운데 머핸 대령만 한 이가 없다.³² 그의 대작은 영국과 미국의 군국주의자·제국주의자들에게 권위 있는 책으로 받아들여져 종이 값이 오를 만큼 잘 팔린다. 번역서 광고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지식인 중에도 애독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군국주의를 논할 때 먼저 그의 의견을 살피는 것은 유익할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군비와 징병의 공덕 (軍備と徴兵の功徳)

머핸이 군비와 징병의 공덕을 설명하는 솜씨는 대단히 교묘하다. 그의 말은 이렇다.

군비가 경제적으로 생산을 위축시키고 사람의 생명과 시간에 세금을 매긴다는 등의 불이익과 해악은 날마다 귀가 따갑게 듣는 이야기이므로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 보면 그 이익이 폐해를 갚고도 남지 않는가. 상급자의 권위가 약해지고 기강이 크게 해이해지는 때에, 젊은 국민이 질서와 복종과 존경을 배우는 병역이라는 학교에 들어가 몸을 체계적으로 발달시키고 극기·용기·인격을 군인의 자질로 기르는 것이 어찌 쓸모없겠는가. 많은 젊은이가 자기 마을과 도시를 떠나 한데 모여 높은 지식을 지닌 선배들과 어울리고, 정신을 결합하고 행동을 함께하는 법을 배우며, 헌법과 법규의 권위에 대한 존경을 길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가 무너지는 오늘날 어찌 쓸모없겠는가. 갓 훈련받기 시작한 신병의 태도와 행동을 이미 훈련을 마치고 거리에 모인 병사들의 모습과 체격에 견주어보라. 우열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군사훈련은 훗날 활발하게 생업을 꾸리는 데 결코 해롭지 않으며, 적어도 대학에서 여러 해를 쓰는 것보다 해롭지는 않다.

또 각국 국민이 서로의 무력을 존중하기 때문에 평화는 더욱 확실해지고 전쟁은 줄어든다. 충돌이 생겨도 전개가 빠르고 진정시키기도 쉽다. 어찌 쓸모없는가. 백 년 전의 전쟁이 만성병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급성 발작에 가깝다. 그러므로 급성 전쟁의 발작에 대비하는 것, 곧 올바른 이유를 위해 싸우려는 마음은 본래 선하고 아름답다. 이 마음은 병사가 용병이던 시대보다 훨씬 넓고 강해졌다. 이제 국민이 곧 병사이며 한 군주의 노예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과 질병 (戦争と疾病)


머핸의 말은 교묘하지만 논리에는 크게 어긋난다.

그 주장을 풀어보자. 싸움을 배워 질서·존경·복종의 덕을 기르는 일은 권위가 약해지고 기강이 해이한 오늘날 가장 시급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은 병이며 백 년 전에는 만성병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국민개병제로 전쟁이 줄었고, 드물게 생겨도 급성병이므로 건강할 때 늘 급성 발작에 대비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머핸에게 국민이 전쟁이라는 만성병에 걸려 있던 시대는 질서와 기강이 서 있던 시대이고, 건강한 시대는 ‘기강이 해이하고 종교가 무너지는’ 시대다. 이상하지 않은가.

 

 

권력의 쇠퇴와 기강의 해이 (権力衰微と紀綱の弛廃)


머핸이 권위의 쇠퇴와 기강의 해이를 말하는 것은 아마 사회주의의 발생을 가리킬 것이다. 그릇된 말임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기강이 백 년 전보다 해이해졌다고 치자. 사회주의자가 현 사회의 이른바 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도 기강과 종교의 붕괴 때문이라고 치자. 징병제와 군사훈련으로 과연 이를 막을 수 있는가. 부디 사실을 보라.

 

 

혁명사상의 전파자 (革命思想の伝播者)

미국 독립전쟁을 도우러 갔던 프랑스 군인들은 프랑스혁명 때 질서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는가. 파리에 들어갔던 독일 군인들은 독일 여러 나라에 혁명 사상을 퍼뜨리는 유력한 전파자가 아니었는가. 오늘날 유럽 대륙에서 징병제를 채택한 나라의 병영이 사회주의의 큰 학교이자 현 사회에 대한 불만을 기르는 곳이 된 것은 뚜렷한 현상이 아닌가. 나는 사회주의 사상이 융성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를 길러낸다는 이유로 병영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병사 훈련이 상급자에 대한 복종과 존경의 미덕을 기른다는 머핸의 말이 얼마나 그릇된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카이사르의 군대는 국가 질서를 얼마나 존중했는가. 크롬웰의 군대는 처음에 의회를 위해 뽑은 칼을 휘둘러 도리어 그 의회를 뒤엎지 않았는가.³³ 그들은 카이사르와 크롬웰만 알았을 뿐 국가의 질서와 기강은 몰랐다.

 

 

질병의 발생 (疾病の発生)


사람은 오직 선한 목적을 위해 싸우려고, 곧 급성병의 치료에 대비하려고 군사훈련을 받는가. 그렇다고 해도 백 년 동안 치료할 기회가 오지 않으면 유유히 훈련으로 시작해 훈련으로 끝나는 데 만족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반드시 스스로 그 병을 일으켜 마음을 채우려 할 것이다.

 

 

징병제와 전쟁 횟수 (徴兵制と戦争の数)

국민이 모두 병사가 되어 왕후의 노예가 아니라는 말은 참으로 옳다. 그러나 그 때문에 각국 국민이 서로의 무력을 존중하여 전쟁이 줄어든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고대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도 국민이 모두 병사였으며 반드시 왕후의 노예였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전쟁은 이른바 만성병이지 않았는가. 약소국을 정벌할 때에는 용병이 순전한 징집병보다 편리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국민개병의 징병제가 전쟁을 미리 막거나 줄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폴레옹의 전쟁도 징병으로 치렀다. 근대 유럽의 오스트리아·프랑스 전쟁, 크림전쟁,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 보불전쟁, 러시아·튀르키예 전쟁도 잇따라 징병제 아래에서 참상을 빚지 않았는가.

 

 

전쟁이 감소한 이유 (戦争減少の理由)


최근 비슷한 힘을 가진 두 나라의 전쟁이 빨리 끝난다면, 그것은 국민의 군사훈련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전쟁의 피해가 너무 크거나, 사람들이 도리를 더 빨리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1880년 이후 대등한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은 두 국민이 서로 존경해서가 아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내다보고 얼마나 미친 짓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싸우면 함께 쓰러질 것을 안다. 러시아 황제는 일등국과 싸운 결과가 파산과 몰락임을 안다.

강대국들이 서로 싸우지 않는 까닭은 이것뿐이다. 징병 훈련이 존경심을 길러준 공덕이 아니다. 보라. 그들은 이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크게 무력을 쓰려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들의 허영과 호전성과 야수적 본성은 군사훈련으로 오히려 맹렬히 부추겨지고 있다.

 

32.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Alfred Thayer Mahan, 1840~1914)은 미국 해군 장교이자 해양력 이론가다. 해군력과 통상·국력의 관계를 논한 저술이 각국의 해군 확장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33.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의 기존 공화정 질서에 도전했다. 크롬웰은 잉글랜드 내전에서 의회군을 이끌었지만 1653년에는 군대를 동원해 잔부의회를 해산했다. 저자는 군대의 충성이 법과 제도보다 지휘관 개인에게 향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3

 

전쟁과 문예 (戦争と文芸)

군국주의자는 말한다. 쇠가 물과 불의 단련을 거쳐 날카로운 칼이 되듯, 사람도 전쟁의 단련을 한 번 거치지 않으면 위대한 국민이 될 수 없다고. 미술·과학·제조업이 전쟁의 격려와 자극 없이 높은 발전에 이르는 일은 드물며, 옛날부터 문예가 크게 융성한 시기는 대개 전쟁 뒤였다고 한다. 페리클레스 시대는 어떠하며, 단테 시대는 어떠하며, 엘리자베스 시대는 어떠하냐고 묻는다. 나는 평화회의가 제창되었을 때 영국의 유력한 군국주의자 한 사람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페리클레스·단테·엘리자베스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알았다. 그러나 옛 역사는 거의 전쟁으로 가득하다. 전쟁을 겪은 것은 이 시대들만이 아니며 다른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들의 문학이 오로지 전쟁이 남긴 혜택이라고 하겠는가. 전쟁 뒤 문학이 급속히 융성했음을 입증하거나, 문학에 전쟁과 관련된 일관된 특징이 있음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억지로 갖다 붙인 말일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쟁을 좋아하고 잘하기로는 스파르타만 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스파르타에는 후세에 전할 기술이나 문학이나 철학이 하나라도 있는가. 영국의 헨리 7세와 헨리 8세 시대는 격렬한 내란이 거듭된 뒤였지만, 문예의 발전은 볼 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엘리자베스 시대 문학의 부흥은 무적함대 전투보다 훨씬 전에 싹텄다. 스펜서·셰익스피어·베이컨이 이 전쟁 때문에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³⁴

 

 

유럽 여러 나라의 문학과 예술 (欧洲諸国の文学芸術)


30년전쟁은 독일의 문학과 과학을 한때 침체시켜 버렸다. 루이 14세 즉위 무렵 융성했던 프랑스의 문학과 과학은 그의 잦은 전쟁으로 크게 쇠퇴했다가 말년에야 다시 살아났다. 프랑스 문학은 승전의 시대보다 패배와 곤경의 시대에 오히려 늘 성하지 않았는가. 근대 영국의 테니슨과 새커리의 문학, 다윈의 과학을 크림전쟁 승리 덕분이라고 하면 누가 웃지 않겠는가. 근대 러시아의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투르게네프의 문학을 크림전쟁 패배 덕분이라고 해도 누가 웃지 않겠는가. 독일의 대가들은 보불전쟁 뒤가 아니라 전에 나왔다. 미국 문학의 전성기는 내전 뒤가 아니라 전에 있었다.

 

 

일본의 문예 (日本の文芸)

우리 일본의 문예도 나라·헤이안 시대에 성했다가 호겐·헤이지의 난 때 쇠퇴했다. 호조씨 아래에서 잠시 안정을 얻어 겨우 부흥으로 향했으나, 겐코 이후 남북조시대에서 오닌의 난을 거쳐 겐키·덴쇼 연간에 이르는 동안 거의 사라졌다. 겨우 오산의 승려들이 한 줄기 명맥을 이어갔다는 것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읽은 이가 인정할 일이다.³⁵

그러므로 전쟁 뒤에 문예가 성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 중 억눌리고 가로막혔던 문예가 겨우 태평한 때를 만나 고개를 든 것이다. 전쟁이 촉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무라사키 시키부·아카조메 에몬·세이 쇼나곤이 전쟁에서 무슨 감화를 받았는가. 산요·바킨·후라이·소린이 전쟁에서 무슨 격려를 받았는가. 오가이·쇼요·로한·고요가 전쟁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³⁶

나는 전쟁이 사회 문예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을 보았다. 발전을 돕는 것은 보지 못했다. 청일전쟁에서 생긴 ‘쳐라, 벌하라, 청나라를’이라는 군가를 위대한 문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무기의 개량 (武器の改良)


칼과 창, 군함과 대포가 개량되어 더 견고하고 날카로워지는 데에는 전쟁의 힘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도 모두 과학과 기술 진보의 결과이며 실은 평화가 준 선물이 아닌가. 설령 전쟁 자체의 공로라고 해도, 그런 발명과 개량이 국민을 고상하고 위대하게 만드는 지식과 도덕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군인의 정치적 재능 (軍人の政治的材能)


군국주의는 사회 개선과 문명 진보에 보탬이 될 수 없다. 싸움에 숙달하고 군인으로 생활한다고 해서 정치·사회적으로 사람의 지혜와 덕성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이 점을 더 분명히 입증하려고, 옛날부터 무공이 찬란했던 전장의 영웅들이 정치가로서의 재능과 문치의 성적에서는 얼마나 딱했는지 보여주겠다.

 

 

알렉산드로스·한니발·카이사르 (アレキサンドル、ハンニバル、シーザー)

고대의 알렉산드로스·한니발·카이사르는 호걸 중의 호걸이어서 어린아이도 이름을 안다. 그러나 파괴하는 능력에 비하면 건설할 힘은 조금도 없었다. 정치학의 눈으로 보면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실로 존립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일시적인 정복의 경련일 뿐이었다. 곧바로 분열한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한니발의 전략과 지모는 15년 동안 이탈리아를 압도하여 로마인이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골수에 든 카르타고의 부패는 구하지 못했다. 카이사르는 전장에서는 굶주린 호랑이였지만 정치 무대에서는 눈먼 뱀이었다. 로마의 민정을 타락시키고 온갖 원망이 모이는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요시쓰네·마사시게·유키무라 (義経、正成、幸村)

미나모토노 요시쓰네는 전쟁에 능했다. 구스노키 마사시게와 사나다 유키무라도 능했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정치적 수완을 믿을 수 있는가. 그 완벽한 군인적 자질로 정치 무대에 섰다면 호조씨 아홉 대, 아시카가씨 열세 대, 도쿠가와씨 열다섯 대의 기틀을 놓을 수 있었겠는가.³⁷

 

 

항우와 제갈량 (項羽と諸葛亮)

크고 작은 74번의 싸움에서 이긴 항우는 법을 세 조항으로 줄인 한 고조를 당하지 못했다. 제갈량의 팔문둔갑도 끝내 무제의 『맹덕신서』에 미치지 못했다.³⁸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길은 적의 깃발을 빼앗고 장수를 베는 힘과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와 나폴레옹 (フレデリッキと奈勃翁)

근대 군인 중 정치적 공적을 가장 많이 세운 이는 프리드리히와 나폴레옹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처음부터 군인 생활을 몹시 싫어했고 전투를 배우는 일을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이른바 군국주의적 이상의 적절한 대표가 아니다. 그런 그조차 사후에 견고한 건설물을 남기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의 제국이 료고쿠 다리 위의 불꽃놀이처럼 번쩍였다가 곧 사라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³⁹

 

 

워싱턴 (ワシントン)


워싱턴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이른바 나가면 장수요 들어오면 재상이었다. 그러나 그를 순전한 군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형편에 떠밀려 싸웠을 뿐, 병마를 즐긴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의 정치가 (米国の政治家)


미국에서 군인적 소양을 지닌 사람이 뛰어난 정치가의 반열에 오른 적이 없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군인으로서 처음 미국 대통령이 된 이는 앤드루 잭슨이 아닌가. 관직을 다투는 일이 실로 그의 시대에 시작되지 않았는가.⁴⁰

그랜트 장군은 최근 군인들 가운데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성적이 몹시 좋지 않았다는 것은 같은 당 사람도 다툴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그가 인내심 있고 정직하다 해도 전쟁에서의 기술과 수완을 문민의 일에 적용할 수 없음을 어찌하랴.

 

 

그랜트와 링컨 (グラントとリンコルン)


나는 링컨이 군사에 밝아 여러 장교가 미치지 못할 계획을 세운 것을 본다. 그러나 이는 참된 대정치가는 군사도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군사훈련이 대정치가를 만든다는 어리석은 주장의 증거는 아니다. 공자는 ‘문사의 일을 갖춘 자에게는 반드시 무비가 있다’고 했다. 워싱턴과 링컨이 그러하다. 그러나 무비를 갖추었다고 반드시 문사의 능력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랜트가 그러하다.

 

 

넬슨과 웰링턴 (ネルソンとウェルリントン)


근대 영국에서 공명이 세계에 빛나 군인의 이상이 되고 군국주의자의 숭배가 집중되는 인물은 육지의 웰링턴과 바다의 넬슨이다. 웰링턴의 정치적 수완은 평범한 정치가보다 조금 나은 데가 있었지만 한 시대를 경영하고 백성을 이끌 재능은 아니었다. 그는 철도가 하등칸 승객에게 주는 편의를 ‘하층민이 쓸데없이 나라 안을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라며 반대하지 않았는가. 넬슨은 거의 말할 것도 없다. 해군 군인으로서의 가치 이외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인물이었다.

 

 

야마가타·가바야마·다카시마 (山県、樺山、高島)


우리나라를 돌아보자. 저 군인들의 정치적 수완 중 칭찬할 만한 것이 얼마나 있는가. 동양의 몰트케·넬슨·웰링턴에 빗대어 숭배받는 야마가타 후작, 가바야마 백작, 다카시마 자작이 메이지의 정치사와 사회사에 남길 만한 일을 무엇을 했는가.⁴¹ 선거 간섭과 의원 매수의 선례를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부패와 타락의 극으로 몰아넣은 죄악의 장본인이 그들이 아닌가.

 

 

군인 가운데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 (軍人の智者賢者)


내가 함부로 군인과 군대를 욕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농민·장인·상인 중에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있듯이 군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들을 존경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다만 그 지혜와 현명함은 군대 훈련이나 전쟁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손에 총검이 없고 어깨에 견장이 없고 가슴에 훈장이 없어도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은 현명하다. 아무리 지혜롭고 현명해도 군인이라는 직무 자체로, 군사교육의 성과로 사회 전체에 주는 이익은 없다.

일사불란한 단결을 배운다고 말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는 단결에 무엇을 귀하게 여길 것인가. 규율에 복종한다고 말하지 말라. 재물을 탕진하는 규율에 무엇을 존경할 것인가. 용기가 생긴다고 말하지 말라. 문명을 파괴하는 용기에 무엇을 바랄 것인가. 아니, 이 규율과 단결과 용기조차 병영 밖으로 한 발만 나가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강자에게 맹종하고 약자를 짓밟는 악습뿐이다.

 

34. 무적함대 전투는 1588년 스페인 함대와 영국의 싸움이다. 이 절의 문학사 판단에는 저자의 논쟁적 단순화가 섞여 있다. 예컨대 헨리 7·8세 시대에 문예 발전이 전혀 없었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총괄 평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35. 호겐·헤이지의 난은 1156·1159년의 권력투쟁이다. 겐코는 1331년부터의 연호, 오닌의 난은 1467년에 시작한 내란이며, 겐키·덴쇼는 1570~1592년에 걸친 연호다. 오산은 선종 사찰의 위계 체계로, 그 승려들은 중세 일본의 한문학과 학술을 이어갔다.

36. 헤이안 문학의 여성 작가 세 사람 뒤에, 에도시대의 라이 산요·교쿠테이 바킨·히라가 겐나이(후라이)·지카마쓰 몬자에몬(소린), 근대의 모리 오가이·쓰보우치 쇼요·고다 로한·오자키 고요를 열거한다. 필명은 원문에 맞추되 독자의 식별을 위해 역주에서 풀었다.

37. 일본의 무장들과 막부 지배 가문들을 대비한 대목이다. ‘호조씨 아홉 대’ 등 대수 표기는 원문을 따랐다. 본문은 개별 인물의 종합 평가보다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재능이 같지 않다는 주장을 강조한다.

38. 한 고조는 유방, 무제는 위 무제 조조를 뜻한다. 팔문둔갑과 『맹덕신서』에는 후대 병법 전승과 『삼국지연의』의 이미지가 겹친다. 엄밀한 병서사적 비교라기보다 널리 알려진 인물과 병법을 동원한 비유다.

39.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다. 료고쿠는 에도·도쿄의 이름난 불꽃놀이 장소다.

40. 워싱턴 역시 군인이었으므로 잭슨을 ‘최초’라 한 말은 문자 그대로 정확하지 않다. 저자는 앞에서 워싱턴을 직업적 무인 유형에서 제외한 뒤 잭슨을 그 유형의 첫 사례로 삼는다. 관직 분배를 정당의 보상 수단으로 이용하는 엽관제를 비판하는 문맥이다.

41.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바야마 스케노리, 다카시마 도모노스케다. 군 경력과 정부 고위직을 겸한 메이지 인물들이다. 특히 1892년 총선거의 정부 개입은 당시의 주요 정치 문제였다.

 

 

4

 

군국주의의 폐해 (軍国主義の弊毒)


군국주의와 전쟁은 사회 문명의 진보에 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해치고 파괴하는 무서운 독을 품고 있다.

 

 

고대 문명 (古代文明)


군국주의자는 말한다. 고대 문명이 역사에 나타날 때에는 모두 군사와 상업이 하나로 결합한 사회(兵商一致)가 아니었느냐고. 그들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사례를 들어 군비가 문명을 진전시킨다는 증거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틀렸다. 나는 믿는다. 이집트가 무력 정복과 군사적 생활의 나라로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번영은 몇백 년 더, 그 명맥은 몇천 년 더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는 따로 살펴볼 만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アゼンとスパルタ)

고대 그리스 여러 나라는 군사를 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스파르타는 철두철미하게 군국주의를 지켰다. 생활은 훈련이었고 사업은 전쟁이었으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문명에서 볼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은 앞서 말했다. 아테네는 그만큼 심하지 않았다. 페리클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저들처럼 훈련으로 부지런히 자신을 괴롭히지는 않지만, 막상 일이 닥쳐도 용기가 꺾이지 않는다. 전쟁에 대비하느라 일생을 훈련에 쏟는 사람들보다 결코 못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큰 이익이 아닌가.’ 근대의 군국주의자들은 스파르타를 택하겠는가, 아테네를 택하겠는가.

아무리 완고하고 어리석어도 풍요로운 아테네 문명을 버리고 스파르타의 야수적 군국주의를 찬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스파르타야말로 가장 높은 이상에 들어맞지 않는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의 부패 (ペロボンネシアン戦後の腐敗)

군국주의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파르타처럼 지나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테네의 군국주의만 잘 본받아도 훌륭할 것이다.’ 스파르타보다는 낫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아테네의 군비는 정치 개선에 무슨 공이 있었는가. 사회적 품성을 높이는 데 무슨 공이 있었는가. 시민에게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것 말고 어떤 이로움이 있었는가. 그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30년 동안 치렀다.⁴² 군국주의의 이익과 공덕이 이때 절정으로 드러나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부패와 타락만 있었다.

 

 

투키디데스의 위대한 역사 서술 (タシヂヂスの大史筆)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인의 도덕을 쓸어버리고 신의를 깨뜨리고 이성을 없애 얼마나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려면, 투키디데스의 위대한 역사 서술을 빌려보자.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⁴³

도시들에서 소요가 일어나자 혁명적 기운은 역참을 따라 명령이 전해지듯 번져, 종래의 모든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그치지 않았다. 계책은 거듭할수록 난폭해지고 복수는 거듭할수록 참혹해졌다. 말의 뜻은 더 이상 실제 사물과 같은 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바뀌었다. 무모함은 의로운 용기로 불렸고, 신중한 숙고는 겁쟁이의 구실로 불렸다. 온화함은 나약함의 가면이 되었고,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한 가지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광란의 활력은 참된 남자의 본성으로 여겨졌다. 난폭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신임받고 반대하는 사람은 의심받았다. 처음부터 당파의 음모에 끼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은 이간질하는 자, 적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취급받았다. 악행으로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은 찬탄받았고, 선량한 사람을 선동하여 죄악으로 이끄는 사람은 더욱 찬탄받았다. 복수는 자기 보전보다 귀했다. 당파 사이의 결합은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을 때뿐이었다. 상대 당파를 압도할 때에는 간계와 폭행을 가리지 않았고, 무서운 복수가 다시 뒤따랐다.

이처럼 혁명은 그리스인의 온갖 악덕을 빚어냈다. 고상한 본성의 큰 요소인 소박함은 비웃음 속에 사라졌다. 추한 다툼과 싸움의 마음은 곳곳에서 기세를 부렸다. 어떤 말로도 그들을 화해시킬 수 없었고, 어떤 맹세로도 믿게 할 수 없었다. 비열한 재주가 대체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 이것이 고대의 가장 문명한 나라, 모든 시민이 군대 훈련을 거친 땅에서 군국주의자가 찬미하는 전쟁이 길러낸 결과가 아닌가. 우리 일본의 군국주의자도 청일전쟁 뒤 사람들의 마음이 이와 조금 닮은 것을 보고 틀림없이 만족할 것이다.

 

 

로마를 보라 (羅馬に見よ)


로마로 내려와 보자. 그들이 용감하게 싸워 이탈리아 여러 지역의 자유를 빼앗은 결과, 로마 시민에게 어떤 품성이 길러지고 어떤 미덕이 자랐는가. 국내는 마침내 참혹한 도살장이 되었다. 마리우스가 나오고 술라가 나왔다.⁴⁴ 시민이 다스리는 공화국은 귀족의 전제국으로 바뀌었고 자주적인 시민은 꿈틀거리는 노예가 되지 않았는가.

 

 

드레퓌스 대사건 (ドレフューの大疑獄)


최근 세계의 이목을 놀라게 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은 군사 지배가 사람들의 마음을 썩게 만드는 뚜렷한 증거다.⁴⁵

재판의 모호함, 처분의 난폭함, 그 사이 떠돌던 소문의 기괴함과 추잡함을 보라. 프랑스 육군에는 악인과 바보밖에 없는가 의심하게 할 지경이었다. 이상할 것도 없다. 군대 조직에서는 다른 사회보다 악인이 흉포함을 부리기 쉽고, 정의로운 사람마저 바보처럼 만들어버릴 위험이 더 크다. 육군 내부는 억압의 세계, 권위의 세계, 계급의 세계, 복종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치와 도덕은 그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권의 독립이 온전하지 못한 동양 여러 나라를 제외하면, 이토록 횡포한 재판과 선고는 육군 내부와 군법회의 밖에서는 볼 수 없다. 보통의 법정이라면 감히 하지 못할 일이며 보통의 민법과 형법이라면 허용하지 못할 일이다.

 

 

졸라가 분연히 일어나다 (ゾーラ蹶然として起てり)


그런데 용맹을 자랑하는 수만의 군인 가운데 드레퓌스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심을 요구하고 나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차라리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이더라도 육군의 수치를 덮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때 에밀 졸라가 벌떡 일어났다. 불꽃 같고 꽃 같은 그의 위대한 글이 뜨거운 피를 프랑스 4천만 국민의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그때 졸라가 입을 다물었다면 프랑스 군인들은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드레퓌스의 재심은 영원히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부끄러움 없고 의로움 없고 용기 없는 모습은 시중의 글 쓰는 사람 하나만도 못했다. 군사훈련은 여기서 무슨 가치가 있는가.

 

 

당당한 군인과 시정의 한 문인 (堂々たる軍人と市井の一文士)

맹자는 ‘스스로 돌아보아 곧다면 천만 사람이 막아서도 나는 나아간다’고 했다. 이 기개와 정신이 글 쓰는 졸라 한 사람에게는 보이고 당당한 군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인가.

어떤 이는 말한다. ‘상관에게 항거하는 것은 군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드레퓌스 사건 때 프랑스 군인들이 맹종했다고 해서 도덕심이 부족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더 큰 사례를 보자.

 

 

키치너 장군 (キッチェネル将軍)

지금 트란스발에서 싸우는 키치너 장군은 영국의 군국주의자와 제국주의자가 귀신처럼 우러러보는 인물이 아닌가. 그런데 보라. 그는 앞서 수단을 정벌하고 마흐디의 무덤을 파헤쳐 마음을 채운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⁴⁶ 오자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평왕의 시신을 채찍질한 일은 2천 년 전에도 식자들이 침 뱉고 욕한 일이었다. 하물며 19세기말 문명의 시대에 대영제국 국기 아래 버젓이, 이른바 미개인들이 성자요 구세주라 부르는 위인의 무덤을 파헤치다니. 머핸이 말한 극기·인내·용기를 기른 군인이라야 비로소 차마 할 수 있는 일이리라. 세상 사람을 모두 군국교 신자로 만들고, 마흐디의 무덤을 파헤치는 마음을 이상으로 삼으며, 한 나라의 정치를 이 잔인한 손에 맡긴다면 이 또한 두렵지 않은가.

 

 

러시아 군대의 폭압 (露国軍隊の暴虐)

가까이는 북중국에서 러시아 군대가 저지르는 폭행을 보라. 퉁저우 한 지역에서만 그들의 위협 때문에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여성이 700여 명이라 한다. 이 한 가지 일만으로도 코끝이 시리고 머리칼이 곤두서지 않는가.⁴⁷ 군사훈련과 전쟁 준비가 인격을 높이고 도의를 기른다면, 13~14세기 이래 싸움 속에서 태어나 싸움 속에서 죽어온 코사크는 인격이 높고 도의가 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이니 어찌 된 일인가.

군국주의가 정말 국민의 지혜와 덕을 북돋고 지위를 높여준다면 튀르키예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⁴⁸

 

 

튀르키예의 정치 (土耳其の政治)


튀르키예의 정치는 군국의 정치이며 예산은 군비를 위한 예산이다. 무력으로 보면 결코 약소국이 아니다. 19세기에 패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나바리노에서 싸웠고 크림에서 싸웠으며 플레브나에서 싸웠고 테살리아에서 싸웠다.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자랑거리인가. 자랑할 만한 것인가. 부패·흉포·빈곤·무지 등 문명의 모든 측면에서 유럽의 맨 아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그 나라가 아닌가. 국가의 운명은 끊어질 듯한 실 한 가닥과 같아 니콜라이 1세가 말한 ‘병자’로 대접받는 것도 그 나라가 아닌가.

독일은 대체로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의 나라임을 아직 잃지 않았으며 문예와 과학도 여전히 빛난다. 그러나 철혈주의와 군국주의가 위아래를 휩쓴 뒤, 한때 높고 원대했던 윤리적 사상은 이제 어디 있는가.

 

 

독일과 한 시대 도덕의 원천 (独逸と一代道徳の源泉)

그 국민은 한때 유럽의 도덕을 길어내는 원천이었다. 칸트·실러·헤르더·괴테·리히터·피히테·블룬칠리·마르크스·라살·바그너·하이네의 이름은 문명국들이 우러러 본보기 삼았고, 그 감화는 끝없이 넓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오늘도 많은 예술과 과학을 독일에서 배운다. 그러나 철학과 윤리, 정의와 인도의 큰 문제에서 지금 독일의 문학을 크게 배우려는 사람이 있는가. 지금 독일인의 가르침을 갈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사회주의라는 이상이 거센 물살 한가운데 버티는 기둥으로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면, 유럽 여러 나라가 우러러 본보기 삼을 것이 있는가.

 

 

기린과 봉황은 가시덤불에 깃들지 않는다 (麟鳳は荊棘に栖まず)

이상할 일이 아니다. 기린과 봉황은 가시덤불에 깃들지 않는다. 비스마르크와 몰트케를 이상으로 삼는 세계에서는 괴테와 실러의 재탄생을 쉽게 바라기 어렵다. 가련한 군국주의자여. 빌헬름·뷜로·발더제만으로 얼마나 문명을 진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⁴⁹

 

 

독일 황제와 불경죄 (独逸皇帝と不敬罪)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군국정치가 행해지는 하루만큼 국민의 도의는 하루 더 부패한다. 폭력이 행해지는 하루는 이성이 사라지는 하루를 뜻한다. 독일이 비스마르크의 독일이 된 뒤 유럽에서 윤리적 영향력을 잃은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빌헬름 2세가 즉위한 뒤 10년 동안 불경죄로 처벌받은 사람이 수천 명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그 죄인 가운데 미성년자가 많았다는 것도 보지 못했는가. 충량한 우리 일본 신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군국주의자는 그래도 이것을 바라야 한다고 할 것인가. 이러고도 군국정치를 영예롭다고 할 것인가.

 

42.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통상 기원전 431~404년, 약 27년으로 계산한다. 원문의 ‘30년’은 개략적인 표현이다.

43.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3권의 내분 묘사에 해당한다. 여기서 원문이 ‘혁명’이라 옮긴 현상은 도시국가 내부의 당파적 내전·정변을 뜻하며, 고토쿠가 다른 곳에서 긍정하는 사회혁명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44.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로마 공화정 말기 내전의 주역이다. 술라의 독재와 정적 처형은 저자가 말하는 군사력의 국내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다.

45. 유대계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1894년 간첩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졸라는 1898년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로 군과 사법부의 부정을 규탄했다. 다만 ‘나선 군인이 하나도 없었다’는 원문의 단언과 달리 조르주 피카르 중령 등 군 내부에서도 진상 규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다. 드레퓌스의 최종 복권은 이 책 출간 뒤인 1906년이다.

46. 키치너는 1898년 옴두르만 전투 뒤 마흐디 무함마드 아흐마드의 무덤을 파괴하고 유해를 훼손했다. 마흐디는 수단의 종교·정치 지도자였다. 오자서는 중국 춘추시대 인물로, 아버지를 죽인 초 평왕의 시신을 훼손했다는 고사로 유명하다.

47. ‘700여 명’은 원문이 전하는 수치다. 이 번역에서는 독립된 사료 검증을 거친 확정 수치로 제시하지 않는다. 코사크의 기원을 13~14세기로 잡은 서술 역시 저자의 역사적 개괄이다.

48. 이 대목의 튀르키예는 오스만제국이다. 나바리노(1827), 크림전쟁(1853~1856), 플레브나 공방전(1877),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의 테살리아 전역(1897)을 열거한다. 원문은 군사적 지속력과 사회적 쇠퇴를 대비하며, ‘유럽의 병자’라는 당시의 외교적 표현을 끌어온다.

49. 빌헬름 2세, 제국 총리 베른하르트 폰 뷜로, 군인 알프레트 폰 발더제다. 바로 앞의 기린·봉황은 고결한 인재를, 가시덤불은 그런 인재가 살기 어려운 환경을 뜻한다.

 


5

 

결투와 전쟁 (決闘と戦争)


군국주의자는 다시 전쟁을 찬미하며 말한다. 국가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개인 사이의 분쟁이 결투로 최후의 판정을 받듯 국제 분쟁의 최후 판정자는 전쟁이다. 지구 위에 국가라는 구별이 있는 한 전쟁은 그칠 수 없고, 전쟁이 있는 한 군비의 필요도 사라질 수 없다. 게다가 전쟁은 강한 힘, 굳게 견디는 마음, 굽히지 않는 성품을 겨루어 참된 사내의 기개를 발휘하는 일이다. 이것이 없다면 세상은 나약한 여인들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여기서 개인 사이 결투의 옳고 그름과 이해득실까지 논할 여유는 없다. 그러나 전쟁을 결투에 견주는 것은 더없이 부당하다고 단언한다. 서양의 결투, 일본의 하타시아이는 오직 명예와 체면을 목적으로 한다.⁵⁰ 힘을 겨룰 때에는 지극히 평등한 처지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운다. 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일이 끝나고, 뒤에 다시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참으로 장부의 행위라 할 만하다. 전쟁은 완전히 반대다. 목적의 비루함과 수단의 저열함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옛날 이름을 밝히고 일대일로 승부를 겨루던 싸움은 조금 결투와 닮았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오히려 가장 어리석다고 비웃는 방식이 아닌가. 전쟁은 교활함과 속임수를 요구할 뿐이다. 조건의 평등과 방법의 공명정대함을 중히 여기는 것은 ‘송양지인’이라 하여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는가.⁵¹

 

 

간교한 지혜를 겨루는 기술 (猾智を較するの術)

전쟁은 교활한 지혜를 겨루는 기술일 뿐이며, 전쟁의 발달은 교활한 지혜의 발달이다. 미개인이 그 지혜를 부릴 때에는 대개 적의 허를 찌르고, 군사를 숨기고, 밤에 습격하고, 식량길을 끊고, 함정을 파는 데 있었다. 교활함에서 뒤진 자는 몸을 잃고 재산을 빼앗기고 땅을 빼앗겼다. 우수한 자, 적합한 자, 곧 교활함과 속임수에 능한 자만 살아남았다. 그러자 보통의 꾀로는 쓸모가 없어 더 많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해졌다. 그 교육과 훈련도 충분히 쓸모를 다하지 못하게 되자 무기의 기교를 크게 다투게 되었다. 이것이 옛날부터 전쟁 기술이 발달한 대략의 순서다.

 

 

전쟁이 발전해 온 단계 (戦争発達の歩一歩)

전쟁의 발전은 걸음마다 어떻게 적을 함정에 빠뜨릴지를 연구하는 일이었다. 목적이 얼마나 비루하고 방법이 얼마나 저열하든 묻지 않았다. 이를 개인의 결투와 같은 날에 논할 수 있는가. 남자의 미덕이라는 강건함·인내·강직함을 겨루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개인의 결투는 승패를 마지막 판정으로 삼지만 전쟁은 복수에 복수가 이어지는 참극을 끊임없이 빚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전쟁은 음모요 계략이요, 여성적 행동이요, 여우와 너구리의 술수다. 공명정대한 다툼이 아니다.⁵² 사회가 전쟁을 즐기고 중히 여기고 필요하다고 여기는 한, 인류의 도의는 끝내 이 여성적이고 여우와 너구리 같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은 이 비열한 죄악을 행하려고 수많은 젊은이를 끌어다가 병영이라는 지옥에 던져 넣는다. 야수의 성정을 기르게 한다.

 

 

순박한 시골 장정 (愛々たる田舎の壮丁)

보라. 순박한 시골 청년이 울며 부모 형제자매와 작별하고, 울며 소·말·닭·개와 작별하며, 울며 아름다운 산수와 한가로운 들판을 떠나 병영으로 들어간다. 아침저녁 듣는 것은 상관의 엄한 꾸지람이요, 보는 것은 고참병의 잔인하고 사나운 얼굴이다. 무거운 것을 지고 동으로 몰리고 서로 쫓기며, 피로를 견디며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달린다. 이렇게 3년이다. 얼마나 단조롭고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아귀도의 고통 (餓鬼道の苦)

하루에 받는 돈은 겨우 3전이다. 거의 거지 같은 처지가 아닌가. 그래도 담배를 피워야 하고 우편요금을 내야 한다. 심하면 고참병의 학대를 피하려고 술과 음식 값을 뇌물로 바치고 용돈까지 대줘야 한다. 부자라면 그나마 낫다. 조금이라도 가난한 사람에게 긴 3년은 아귀도의 고통이요 우두마면의 가혹한 벌이다.⁵³ 그런데 부자는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피할 수 있고,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도 피할 수 있다. 가난한 집 자식은 늘 이 잔혹함과 고통을 참아야 한다.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들이 징병검사를 피하고 병영을 탈출하며 자포자기 끝에 때때로 수치스럽다고 여겨지는 죽음을 맞는 것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마음이 몹시 슬플 수밖에 없음을 본다.

이렇게 3년을 지내고 돌아오면 무엇이 남는가. 부모는 늙고 쇠약해졌으며 논밭은 황폐해졌고 자기 행실은 타락했을 뿐이다. 이것까지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고 할 것인가. 의무라고 부를 것인가.

 

 

군비를 자랑하는 일을 그만두라 (軍備を誇揚するを止めよ)

군비를 자랑하기를 그쳐라. 징병제 숭배를 그쳐라. 나는 병영이 무뢰한과 떠도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많은 생산력을 소모하고 유망한 청년들을 꺾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병영이 있는 지방의 풍속이 무너지고 행군로 주변의 선량한 주민이 늘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군비와 징병이 국민을 위해 쌀 한 톨, 돈 한 조각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물며 과학과 문예, 종교와 도덕의 높은 이상이겠는가. 아니, 그런 것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모두 파괴하려 하지 않는가.

 

50. 하타시아이(果し合い)는 약속하여 치르는 결투다. 저자는 전쟁과의 대비(對比, Contrast)를 위해 결투를 이상화한다. 

51. 송나라 양공이 적이 강을 건너거나 진형을 갖추기 전에 공격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패했다는 고사다. 흔히 부적절한 인의, 어리석은 관대함을 뜻한다. 저자는 전쟁에서는 공정함 자체가 조롱받는다고 지적한다.

52. ‘여성적’이라는 비하는 군국주의자의 남성성 논리를 되받는 과정에서 저자 자신도 당시의 성차별적 수사를 사용한 대목이다. 그 표현을 현대의 긍정적 여성성 개념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원문대로 남겼다.

53. 아귀도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불교의 세계이며, 우두마면은 소 머리와 말 머리를 한 지옥의 옥졸이다. 병영의 빈곤과 학대를 지옥의 형벌에 비유했다. 1엔은 100전이므로 3전은 0.03엔이다.

 

 

6

 

어찌 언제까지 서로 도전하는가 (何ぞ長く相挑むや)

아,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가와 국민이여. 왜 그토록 많은 군인과 무기와 전함을 거느리고 끝없이 서로 도발하려 하는가. 왜 들여우처럼 속이고 미친개처럼 물어뜯는 처지에서 속히 벗어나, 더 높은 문명과 도덕의 경지로 들어가려 힘쓰지 않는가.

그들은 전쟁이 죄악이며 해악임을 안다.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평화와 박애가 정의이며 복리임을 안다. 가능한 한 빨리 실현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왜 단호하게 전쟁 준비를 폐지하고 평화와 박애의 복리를 누리지 않는가.

그들은 값싸고 풍부한 생산을 바라며 상업과 무역의 번영을 바란다. 군비가 막대한 자본과 생산력을 소모함을 알고, 전쟁이 통상과 무역을 심하게 방해하고 곤경에 빠뜨림을 안다. 그런데 왜 당장 군비에 드는 비용과 전쟁에 쏟는 힘을 아껴 상공업에 투자하지 않는가.

 

 

평화회의의 결의 (平和会議の決議)

보라. 재작년 러시아 황제가 군비 제한 회의를 제창했을 때 여러 나라는 한마디도 반대할 수 없었다. 영국·미국·독일·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벨기에·이탈리아·튀르키예·일본·청나라 등 20여 나라 전권위원은 분명히 이렇게 결의하지 않았는가. ‘현재 세계의 무거운 짐인 군비 부담을 제한하는 일은 인류의 물질적·정신적 복리를 높이기 위해 매우 바람직하다고 인정한다.’ 이는 평화회의 최종결의서의 말이다.⁵⁴

또 ‘보편적 평화의 유지에 협력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국제 분쟁의 평화적 처리를 돕는 데 온 힘을 다하기로 결의하고……국제적 정의의 감정을 굳건히 하고자 하며, 국가의 안전과 인민의 행복에 기초가 되는 공평과 올바른 이치의 원칙을 국제적 협의로 확립해야 할 필요를 인정한다’고 하여 중재재판에 관한 규정을 만들지 않았는가. 이는 국제 분쟁의 평화적 처리에 관한 조약의 말이다. 그런데 왜 그 뜻과 생각을 더 넓혀 육해군 군비를 결연히 없애지는 않는가.

 

 

겨우 한 걸음 차이일 뿐 (僅かに一転歩のみ)

지금의 군비야말로 평화를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말하지 말라. 공명욕과 허영심이 불타는 정치가와 군인은 대개 총과 대포가 헛되이 녹슬고 전함이 헛되이 썩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언젠가 기회를 잡아 실제로 시험해 보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다. 칼을 든 취객이 주위를 노려보는 꼴이다. 위태롭고도 위험하다. 평화를 보장하는 수단이 평화를 어지럽히는 수단으로 바뀌는 데에는 한 걸음이면 족하다.

맞서는 힘이 비슷한 유럽 나라들 사이에서는 세력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평화를 지켜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와 힘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만나면 곧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평화를 깨뜨린다. 지금 청나라와 남아프리카를 보면 알 수 있다. 무장에 매달려 간신히 소극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군비를 없애고 적극적 평화를 누리는 것만 하겠는가.⁵⁵

그런데도 군비를 없애기는커녕 도리어 쉬지 않고 확장하느라 국력을 다 쏟으면서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없다. 양심이 공명과 이익에 대한 욕심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정의와 도덕이 동물적 본성인 호전성에 눌렸기 때문이다. 박애가 허세에 지워지고 이성이 미신에 흐려졌기 때문이다.

 

 

맹수와 독사가 들끓는 곳 (猛獣毒蛇の区)

아, 개인은 이미 무장을 풀었는데 국가만은 그러지 못한다. 개인의 폭력적 결투는 이미 금했는데 국가만은 그러지 못한다. 20세기의 문명은 아직 약육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은 맹수와 독사가 우글대는 곳에 있는 것처럼 하루도 마음 놓고 잘 수 없다. 수치가 아닌가. 고통이 아닌가. 사회의 선각자들이 이를 무심히 지나쳐도 되는가.

 

54. 1899년 제1차 헤이그 평화회의다. 군비 부담의 제한을 바람직하다고 선언하고 분쟁의 평화적 처리와 중재를 위한 틀을 마련했으나, 포괄적 군비 감축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인용은 일본어 원문의 번역이며 조약 정본의 새 번역은 아니다.

55. 여기의 소극적·적극적 평화는 각각 무력균형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상태와 군비 철폐로 얻는 평화를 뜻한다. 훨씬 뒤 평화학에서 정립된 동일 명칭의 개념을 그대로 소급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제4장 제국주의를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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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는 먹잇감을 찾는다 (野獣肉餌を求む)

들짐승이 이빨을 갈고 발톱을 세우며 포효하는 것은 먹잇감을 찾기 때문이다. 야수적 본성을 벗어나지 못한 저 애국자들이 무력을 기르고 군비를 늘리는 것도, 오로지 자신의 미신과 허세와 호전성을 채워줄 희생물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국심과 군국주의의 광열이 절정에 이르면 영토 확장 정책이 전성기를 맞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이른바 제국주의라는 정책이 유행하는 것도 이것일 뿐이다.

 

 

영토의 확장 (領土の拡張)

이른바 제국주의는 대제국의 건설을 뜻한다. 대제국의 건설은 곧 지배 영토를 크게 늘리는 것을 뜻한다. 나는 슬프다. 영토의 대확장이 수많은 부정과 불의를, 수많은 부패와 타락을, 마침내 몰락과 멸망을 뜻한다는 것이 슬프다.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인가.

대제국의 건설이 주인도 주민도 없는 거친 산야를 개척하고 그곳에 이주하는 데 그친다면 매우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과 기술이 날로 정교해지고 교통이 날로 편리해지는 오늘날, 이 둥근 지구 어디에서 주인도 사람도 없는 땅을 찾을 수 있는가. 세계 어디에나 이미 주인과 주민이 있다면, 폭력을 쓰거나 전쟁을 벌이거나 속임수를 쓰지 않고 한 치의 땅이라도 차지할 수 있는가. 유럽 열강의 아시아·아프리카 영토 확장과 미국의 남양 진출은 모두 군국주의와 무력으로 실행되지 않았는가.

그들은 이 정책을 위해 날마다 천만의 돈을 쓰고 달마다 수백의 목숨을 잃는다. 해를 넘겨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영원히 분주하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동물적 애국심이 솟구쳐 억제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대제국의 건설은 강도질이다 (大帝国の建設は切取強盗なり)

생각해 보라. 무위를 떨치고 사욕을 채우려고 멋대로 남의 국토를 침략하고 재물을 약탈하며, 사람을 죽이거나 노비로 만든다. 그러고는 뽐내며 ‘이것이 대제국 건설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제국 건설은 곧 땅을 빼앗는 강도질이 아닌가.

 

 

무력으로 세운 제국의 흥망 (武力的帝国の興亡)

땅을 빼앗고 강도질하는 것을 무사의 관습이라 여기는 불의하고 부정한 제왕과 정치가는 이를 즐긴다. 지난 세기 이전의 이른바 영웅호걸이 벌인 사업은 대부분 이러했다. 그러나 보라. 하늘은 이 부정과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다. 예부터 무력으로 팽창한 제국 가운데 끝을 잘 마친 것이 있는가. 제왕과 정치가는 처음에 공명과 이익을 위해, 혹은 국내의 결합과 안정을 유지하려고 국민의 야수성을 부추겨 외국을 정벌한다. 이기면 영토를 넓힌다. 대제국이 세워진다. 국민은 허영에 눈이 멀고 군인은 권세를 키운다. 새로 편입한 영토는 억압과 학대를 받으며 세금은 무거워지고 재물은 빼앗긴다. 뒤이어 그 영토의 황폐·고갈·불만·반란, 본국의 사치·부패·타락이 찾아온다. 마침내 그 나라는 새로 일어난 다른 제국에 정복당한다. 예부터 무력 제국의 흥망은 거의 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옛날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폐허를 보고 탄식했다. ‘로마도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 그렇다. 정말 그렇게 되었다. 칭기즈 칸의 제국은 이제 어디 있는가. 나폴레옹의 제국은 어디 있는가. 진구 황후의 지배지는 어디 있으며, 도요토미의 웅대한 계획은 어디 있는가.⁵⁶ 아침 이슬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그리스도교 국가의 제국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로마제국 말기는 이미 그리스도교화하지 않았는가. 노예 해방 이후의 제국은 결코 쇠퇴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스페인 대제국의 본토에서는 노예제가 폐지되어 있지 않았는가. 공업적 제국은 결코 몰락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무어인과 피렌체 사람들도 꽤 산업적인 국민이지 않았는가.

국가의 번영은 강도질로 얻을 수 없고, 국민의 위대함은 약탈과 침략으로 얻을 수 없다. 문명의 진보는 한 제왕의 전제에 있지 않고, 사회의 복리는 한 국기 아래의 통일에 있지 않다. 오직 평화와 자유, 박애와 평등에 있다. 생각해 보라. 호조씨 치하의 일본 사람은 쿠빌라이의 군졸보다 얼마나 제 삶을 온전히 누렸는가. 오늘날 벨기에 사람은 독일과 러시아 사람보다 얼마나 평화를 즐기는가.⁵⁷

 

 

몰락은 국기를 뒤따른다 (零落は国旗に次ぐ)


누가 ‘무역은 국기를 뒤따른다’고 하는가. 역사는 몰락이 국기를 뒤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앞 수레가 뒤집힌 자국을 뒤 수레가 그대로 따른다. 주마등이 끝없이 도는 듯하다. 나는 스키피오가 오늘의 유럽과 미국 여러 나라의 말로를 보고 다시 탄식하게 될까 두렵다.

 

56. 스키피오는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를 함락한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다. 진구 황후의 해외 지배는 일본 고대 전승에 나오는 이른바 삼한 정벌을 가리키며, 역사적으로 입증된 정복 사실이 아니다. 도요토미의 계획은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대륙 진출 구상이다.

57. 벨기에 본국의 평화를 칭찬하는 이 비교는 당시 레오폴드 2세의 콩고자유국에서 벌어진 식민 지배의 폭력을 시야에 넣지 않는다. 이 한계를 보충해서 읽어야 한다.

 

 

2

 

국민의 팽창인가 (国民の膨脹か)


제국주의자는 말한다. ‘옛 대제국의 건설이 제왕과 정치가의 공명욕과 이욕을 위해 이루어진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의 영토 확장은 국민의 팽창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옛 제국주의는 개인적 제국주의였지만 지금의 제국주의는 국민적 제국주의라 불러야 한다. 옛 불의와 해악으로 지금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정말 그런가. 지금의 제국주의는 국민의 팽창인가. 소수 정치가와 군인의 공명심이 부풀어 오른 것은 아닌가. 소수 자본가와 투기꾼의 이욕이 부풀어 오른 것은 아닌가.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팽창’의 다른 쪽을 보라. 국민 다수의 생존 투쟁은 날로 격렬해지고,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지며, 빈곤과 굶주림과 무정부당과 온갖 죄악은 더욱 늘어나지 않는가.⁵⁸ 이런 형편에 다수 국민에게 무슨 여유가 있어 무한히 팽창할 수 있겠는가.

 

 

소수의 군인·정치가·자본가 (少数の軍人政治家資本家)

그런데 저 소수 군인·정치가·자본가는 가련한 다수 국민의 생산을 방해하고 재물을 소모하며 생명까지 빼앗아 대제국을 세우려 한다. 자국민 다수의 진보와 복리를 희생시키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아시아인·아프리카인·필리핀인을 위협하고 학대한다. 그러고는 국민의 팽창이라고 한다. 터무니없어도 너무 터무니없다. 국민 다수가 이 정책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것이 참된 팽창이겠는가. 야수적 호전성이 교묘하게 자극되었기 때문일 뿐, 애국적 허영과 미신과 광열이 잠깐 솟아오른 것에 불과하다. 그 불의와 해악은 옛 제왕의 제국주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트란스발 정벌 (トランスワールの征討)

놀라운 희생 (驚くべき犠牲)

영국이 트란스발을 정벌하는 것은 보어인의 독립과 자유를 빼앗고 수익 높은 금광을 빼앗으며, 영국 국기 아래 아프리카를 통합하고 철도를 종단시켜 소수 자본가·공업가·투기꾼의 이욕을 채우기 위해서다. 세실 로즈의 야심과 체임벌린의 공명심을 채우기 위해서다.⁵⁹ 그 무익한 목적을 위해 얼마나 두렵고 놀라운 희생을 치르는지 보라.

1899년 10월 트란스발 전쟁이 시작된 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겨우 500일이다. 그동안 영국군 사망자는 이미 1만 3천 명에 이르렀으며 부상자는 더 많다. 그 밖에 장애를 입어 군역을 면제받고 귀국한 사람이 3만 명이다. 현지인의 사망자는 셀 수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⁶⁰

 

 

수만 명의 피의 대가, 10억 엔 (数万人の鮮血の価十億万円)


재정적 희생도 보라. 20만 병사를 2천 리 밖에 내놓고 수많은 배를 오가게 하는 비용은 하루에 무려 200만 엔이다. 이미 10억 엔의 부를 두 나라 국민의 피와 맞바꾸지 않았는가. 그동안 금광 채굴이 멈춰 거의 2억 엔어치의 금 생산이 줄었다고도 하지 않는가. 두 나라만의 불행이 아니다. 세계의 복리에 끼치는 영향이 작다고 할 수 있는가.

현지인의 참상은 특히 가엾다. 영국인에게 포로가 되어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된 사람이 이미 6천 명이고, 실론섬으로 보내진 사람이 2,400명이다. 키치너 장군은 이제 1만 2천 명을 더 인도로 보내려 한다. 두 공화국의 장정은 거의 사라졌고 논밭은 완전히 황폐해졌다. 군마가 지나간 들에는 푸른 풀 한 포기 없다고 한다. 아, 그들에게 무슨 허물과 책임이 있는가.

이러고도 지금의 제국주의가 불의하고 부정하지 않다고 할 것인가. 횡포와 해악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높은 도의를 지닌 국민이 용납할 일인가. 20세기 문명의 세계가 용납할 일인가.

 

 

독일의 정책 (独逸の政策)

자유를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영국마저 이러하니, 군국주의의 화신인 독일이 육해군 군비를 크게 늘리느라 늘 귀중한 희생을 많이 치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지난해 북중국의 소요 때 독일 황제가 복수를 외치며 발더제 장군을 동아시아로 보냈다. 같은 해 9월 독일 사회당 대회의 결의는 독일 제국주의의 진상을 남김없이 꿰뚫었다.⁶¹

 

 

독일 사회당의 결의 (独逸社会党の決議)


마인츠에서 열린 독일 사회당 총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독일제국 정부가 취한 중국 전쟁 정책은 자본가의 이익에 대한 광기, 대제국 건설이라는 군사적 영예욕, 약탈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정책의 원칙은 외국 땅을 강제로 차지하고 그 주민을 억압하는 데 있다. 그 결과 약탈자는 야수의 힘을 휘둘러 마음껏 파괴하게 될 것이다. 폭력적이고 불의한 수단으로 집어삼키려는 욕망을 채우므로, 학대받는 자들은 끊임없이 약탈자에게 저항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해외의 약탈과 정복 정책은 반드시 열강의 시기와 경쟁을 일으켜 육해군 군비 부담을 견딜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이는 위험한 국제 갈등과 세계적인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 사회민주당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원칙에 반대하므로, 약탈 정책과 정복 정책에 단호히 반대한다. 인민의 권리·자유·독립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근대 문명의 가르침에 따라 세계 각국의 문화적 관계와 교류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 당의 바람이다. 지금 각국의 중간계급과 군사적 실력자들이 적용하는 원칙은 문명에 대한 대대적인 모욕이다.

얼마나 공명정대하고 고상한 말인가. 해와 별에 견줄 만큼 밝게 빛나지 않는가.

약탈과 정복으로 영토 확장을 꾀하는 유럽 여러 나라의 제국주의는 실로 문명과 인도에 대한 대대적인 모욕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에서도 나는 수많은 부정과 불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제국주의 (米国の帝国主義)

필리핀의 병탄 (比律賓の併呑)


미국은 처음 쿠바의 반란군을 도와 스페인과 싸우면서 자유와 인도를 위해 압정을 제거한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할 만하다. 쿠바 사람들이 그 은혜와 덕을 사모하여 미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합병도 반드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이 온갖 방법으로 쿠바섬 주민을 선동하고 부추긴 흔적까지 굳이 들추지는 않겠다. 그러나 필리핀 군도를 병합하고 정복한 일은 단연 용서할 수 없다.

 

 

독립선언과 건국 헌법은 어찌할 것인가 (独立の檄文と建国の憲法を奈何)

정말 쿠바 반란군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면 왜 필리핀 인민의 자유는 그토록 묶는가. 정말 쿠바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다면 왜 필리핀의 자주독립은 그토록 침해하는가. 다른 인민의 뜻을 거슬러 무력과 폭력으로 억누르고 땅을 빼앗고 부를 약탈하려 한다. 문명과 자유의 빛이 찬란한 미국 건국 이래의 역사를 심하게 더럽히는 일이 아닌가. 필리핀의 땅과 부를 차지하면 미국에 얼마간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해도 된다면 옛 무사의 강도질도 이익 때문에 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들은 조상의 독립선언, 건국헌법, 먼로선언을 어디에 둘 생각인가.⁶²

영토 확장은 국가 생존에 꼭 필요하여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처음 출병할 때에는 자유와 인도를 외치더니 갑자기 국가 생존의 필요를 구실로 삼는다. 타락이 어찌 이리 빠른가.

그들의 말대로 영토를 넓히지 않으면 미국의 경제적 생존이 위험하다고 해보자. 필리핀을 합병해도 얻을 부와 이익은 뻔하다. 그것으로 위험을 구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명맥을 하루 더 연장할 뿐이며, 쇠망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땅과 인구, 자본과 기업 활동의 힘이 그토록 풍부한 나라가 이런 비관적 구실을 내세우다니. 기우가 지나치다고 웃지 않으려 해도 웃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위험 (米国の危険)


나는 믿는다. 훗날 미국에 국가 생존의 위험이 생긴다면, 그 위험은 영토가 좁아서가 아니라 영토 확장에 끝이 없어서 생길 것이다. 대외 세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사회 내부가 부패하고 타락해서 생길 것이다. 시장이 적어서가 아니라 부의 분배가 불공평해서, 자유와 평등이 사라져서, 침략주의와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려서 생길 것이다.

 

 

미국이 번영한 원인 (米国隆盛の原因)

오늘의 미국을 번영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자유인가 억압인가. 이성인가 폭력인가. 자본의 힘인가 군비의 위엄인가. 허영의 팽창인가 부지런한 기업 활동인가. 자유주의인가 제국주의인가. 지금 그들은 공명과 이익에 대한 욕심, 애국적 광열 때문에 앞다투어 그릇된 길로 들어서려 한다. 나는 그들의 앞날이 위험하여 두려울 뿐 아니라 자유와 정의와 인도를 위해 깊이 슬퍼한다.

 

 

민주당의 결의 (デモクラット党の決議)


재작년 가을 미국 아이오와주 민주당 결의의 한 구절은 내 마음을 크게 대변한다.

우리는 필리핀 정복에 반대한다. 제국주의는 군국주의를 뜻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는 무단정치를 뜻하기 때문이다. 무단정치는 토의와 공동 의결에 따른 정치의 죽음, 정치적·산업적 자유의 파괴, 권리 평등의 살해, 민주제도의 절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국주의는 가는 곳마다 이런 부정과 해악을 행하려 한다.

 

58. 원문은 ‘無政府黨(무산정당, 일본 제국 시기 노동자, 농민,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등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을 대변했던 정당들을 뜻)’을 빈곤·기아·죄악과 나란히 적는다. 당시 폭력적 사회 불안과 결부되어 유통되던 명칭이며, 특정한 하나의 정당명으로 한정하기 어렵다. 저자가 뒤에 받아들인 아나키즘과 이 책 집필 당시의 용법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9. 세실 로즈는 남아프리카의 광산 사업가이자 식민 정치가였고, 조지프 체임벌린은 당시 영국 식민장관이었다. 보어인은 주로 네덜란드계 정착민의 후손이다. 그들의 독립 문제와 아프리카 원주민의 권리 문제는 서로 같지 않다.

60. 이 절의 ‘2천 리’는 일본식 거리 단위인 里로 읽어야 한다. 1리 약 3.927km로 환산하면 약 7,850km이나, 원문이 제시한 개략적인 거리이며 현대의 실측 거리를 뜻하지 않는다. 이 절의 사망·부상·포로·전비 수치는 전쟁 도중인 1901년 저자가 제시한 중간 집계이며 전쟁 전체의 최종 통계가 아니다. 원문 ‘土人’은 뒤에 보어인 포로와 두 공화국을 서술하는 문맥을 고려해 ‘현지인’으로 옮겼다. 단위가 없는 다른 곳의 통계와 달리 이 대목의 금액은 원문대로 엔이다.

61. 1900년 9월 마인츠에서 열린 독일 사회민주당 대회와 그 중국 정책 비판 결의다. 본문의 ‘사회당’과 ‘사회민주당’은 여기서 같은 정치 세력을 가리킨다.

62. 1776년 독립선언, 미국 헌법, 1823년 먼로선언을 가리킨다. 저자는 자유와 자치라는 미국의 건국 명분을 필리핀 병합과 대조한다. 그러나 먼로선언의 역사적 운용 전체가 반제국주의적이었다는 뜻으로 확대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3

 

이민의 필요성 (移民の必要)


영국과 독일의 제국주의자가 대제국 건설의 필요를 주장하는 첫째 근거는 이민이다. 그들은 큰소리로 말한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해마다 늘고 가난한 사람도 날마다 늘어난다. 남는 인구를 이주시켜야 하므로 영토 확장을 그만둘 수 없다.’ 얼핏 보면 매우 그럴듯하다.

 

 

인구 증가와 빈민 (人口増加と貧民)

영국과 독일 등의 인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고 빈민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빈민이 늘어나는 원인을 오직 인구 증가로 돌릴 수 있는가. 구제 방법은 해외 이주밖에 없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인구가 많으면 재물이 적고, 인구가 적으면 재물이 많다는 결론이 된다. 우습다. 사회 진보의 큰 법칙과 사회과학과 경제학의 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새와 짐승, 물고기와 조개는 모두 자연의 먹이를 먹는다. 먹는 개체가 늘면 먹이가 줄어드는 것은 필연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산하는 동물이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스스로 옷과 먹을거리를 생산할 지식과 능력이 있다. 그 지식과 능력은 해마다, 시대마다 개선되고 진보하고 늘어난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인구가 몇 배로 느는 동안 부는 분명히 수십·수백 배로 늘었다. 영국과 독일 등은 바로 그 세계의 부 가운데 큰 몫을 차지하는 나라가 아닌가.

 

 

빈민이 증가하는 원인 (貧民増加の原因)

부가 이미 세계 으뜸인데도 빈민이 날로 늘어나는 것을 인구 과잉의 탓이라 할 수 있는가. 원인은 따로 있다. 지금의 경제조직과 사회조직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본가와 지주가 지나친 이익과 토지를 독점하고 부의 분배가 공평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 참된 문명의 도의와 과학적 지식으로 이 폐단의 원인을 없애지 않는다면 이민은 일시적인 관장 요법 같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온 나라 사람을 모조리 이주시켜도 빈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걸음 양보해 이민이 인구 과잉과 빈민 증가를 구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치자. 그래도 영토를 넓히고 대제국을 건설할 필요가 있는가. 자기 나라 국기 아래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가. 사실을 보자.

 

 

영국 이민의 통계 (英国移民の統計)

영국 영토는 넓어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1853년부터 1897년까지 해외로 이주한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약 850만 명 가운데 자기 나라 식민지로 간 사람은 겨우 200만 명에 지나지 않았고, 다른 550만 명은 모두 미국으로 향했다.⁶³ 1895년 영국 이민 통계는 다음과 같다.

| 이주 목적지 | 인원 |
| 미국 | 195,632명 |
| 오스트레일리아 | 10,809명 |
| 영국령 북아메리카 | 22,357명 |

자국 영토로 가는 사람은 영토 밖 나라로 가는 사람에 비해 약 6분의 1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자유가 있는 곳이 고향일 뿐, 이주지가 모국의 영토인지 아닌지는 반드시 중요하지 않다. 이민의 필요를 내세우는 제국주의자의 구실에는 아무 근거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민과 영토 (移民と領土)


나는 이민을 나쁜 일이라 하지 않는다. 적어도 스파르타인이 노예 인구가 늘어난다고 미워하여 죽인 일보다는 훨씬 진보한 방법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넓힐 수 있는 세계의 영토에는 한계가 있고 인구 증가는 한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민이 반드시 자국 영토로 가야 한다면 곤경은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도 찾아온다.

생각해 보라. 영국과 독일 등은 처음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무인지대에서 영토를 찾아 나누어 가질 것이다. 그러면 이민자가 그 땅을 가득 채울 것이다. 다시 땅을 찾다가 남은 곳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서로 죽이고 빼앗을 수밖에 없다. 마침내 무력이 강한 한 나라가 남의 영토를 얻었다고 해도, 몇 년 뒤 그 땅 역시 가득 찰 것이다. 뒤이어 찾아오는 것은 자신의 곤궁과 몰락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제국주의자의 논리이자 목적이라면 참으로 비과학적이다.

한편 프랑스도 지금 맹렬하게 영토 확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인구는 늘지 않고 빈민도 비교적 적다. 이를 보고 어떻게 이민의 필요 때문이라고 하겠는가.

미국도 영토를 늘리려 하지만 이민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땅은 넓고 자연의 부는 풍부하여 세계의 이민자가 온갖 강물이 바다로 모이듯 흘러든다. 영국인만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1893년부터 1897년까지 해외로 이주한 독일인 22만 4천 명 가운데 19만 5천 명이 미국으로 향했다. 스위스·네덜란드·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의 이민자도 대부분 그곳으로 간다. 세계 각국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미국에 어찌 자국민의 해외 이주를 장려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탈리아 역시 돈을 탕진하고 사람을 죽이며 아비시니아의 넓은 들판에서 식민지를 얻으려고 고투하지만, 그 이민자는 모두 남북아메리카의 외국 국기 아래로 향한다.

 

 

커다란 착각 (大なる謬見)

그러므로 나는 단언한다. 제국주의라고 부르는 영토 확장 정책이 참으로 이민의 필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견이다. 이민을 그저 구실로 삼는다면 자신과 남을 심하게 속이는 일이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63. 총계 850만 명과 제시된 목적지 두 범주 200만·550만 명의 합계 750만 명은 일치하지 않는다. 나머지 목적지가 생략되었거나 원문·전재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수치를 임의로 고치지 않았다. 아래 표 역시 원문의 수치를 보존했다. 표의 두 영국령 목적지 합계는 33,166명으로, 미국 이주자와 비교하면 약 1 대 5.9다.



4

 

새로운 시장의 필요성 (新市場の必要)

제국주의자는 입을 모아 외친다. ‘무역은 국기를 뒤따른다. 영토 확장은 우리 상품의 시장을 서둘러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의 교통이 더욱 편리해지고 여러 나라의 무역이 더욱 번영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국 상품의 시장은 반드시 영국 국기 아래 있어야 하고, 독일 상품의 시장은 반드시 독일 국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무력과 폭력으로 강요하지 않으면 무역할 수 없다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암흑시대의 경제 (暗黒時代の経済)

암흑시대의 영웅호걸은 자기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려고 늘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재물을 빼앗으며 조공과 세금을 거두었다. 칭기즈 칸과 티무르의 경제가 이러했다. 제국주의자가 다른 이른바 야만족을 눌러 땅을 빼앗고 사람을 종으로 만들어 매매를 강요하는 것을 경제의 원칙으로 삼는다면, 암흑시대의 경제와 무엇이 다른가. 문명의 과학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 일이 아닌가.

 

 

생산의 과잉 (生産の過剰)


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가. 그들은 자본이 넘치고 생산물이 남아돌아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 이 무슨 말인가. 자본가와 공업가가 과잉생산 때문에 괴롭다고 하는 다른 편을 보라. 수천만 하층민은 늘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모자란다고 울부짖고 있지 않은가. 생산물이 남아도는 것은 정말 수요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다수 인민의 구매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구매력이 모자란 것은 부의 분배가 공평하지 않아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제 문제 (今日の経済問題)

사회주의적 제도의 확립 (社会主義的制度の確立)


생각해보라. 유럽과 미국에서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부와 자본이 소수의 손에 더 쌓이며 다수 인민의 구매력이 쇠약해진 것은, 현행 자유경쟁제도 아래에서 자본가와 공업가가 자본에 대한 과도한 이익을 독차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오늘의 경제 문제는 다른 미개한 인민을 억누르고 상품 소비를 강요하는 데서 풀 것이 아니라, 먼저 자국의 다수 인민의 구매력을 높이는 데서 풀어야 한다. 구매력을 높이려면 자본에 대한 과도한 이익의 독점을 막고 노동 전체에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 공평한 분배를 이루려면 지금의 자유경쟁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고 사회주의적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⁶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자본가의 경쟁이 없을 것이니 이익을 독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익의 독점이 없으면 다수에게 옷과 먹을거리가 공평하게 돌아갈 것이다. 다수에게 옷과 먹을거리가 충분히 주어지면 어찌 남아도는 생산에 매달리겠는가. 과잉생산을 걱정하지 않으면 어찌 국기의 위엄을 빌려 티무르식 경제를 행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문명적이고 과학적이며, 또한 참으로 도덕적이다.

 

 

파산과 타락뿐 (破産のみ堕落のみ)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정치가와 상공업자는 이 길을 택하지 않는다. 잠깐의 허영을 뽐내고 영원히 독점하려고 해외 영토 확장에 막대한 자금을 끝없이 던져 넣는다. 결과는 어떤가. 정부 재정은 더 커지고 자본은 더 빨려 들어간다. 상공업자는 이익에 더 미친 듯 매달리며 분배는 더 불공평해진다. 영토가 넓어지고 무역액이 늘수록 다수 국민의 빈곤은 더욱 커진다. 뒤이어 오는 것은 파산과 타락뿐이다.

 

 

유목적 경제 (遊牧的経済)

영토 확장 비용 때문에 고갈하고 파산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날 같은 열강의 경쟁 속에서 앞으로 구할 수 있는 새 시장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여지가 없어지면 가만히 굶거나, 아니면 나라끼리 싸우고 빼앗아야 한다. 물과 풀을 찾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은 물과 풀이 다하면 쓰러지거나 서로 죽이고 빼앗아야 한다. 제국주의자의 경제는 유목의 경제인가.

새로 구할 시장이 부족하여 열강은 이미 서로 약탈할 조짐을 보인다. 영국인은 ‘독일은 우리 시장의 적이니 격파해야 한다’고 하고, 독일인은 ‘영국은 우리의 경쟁자이니 압도해야 한다’고 한다. 양쪽 모두 전쟁 준비에 하루가 모자란다. 이상하다. 그들의 통상과 무역은 서로의 복리가 아니라 상대에게 손해를 입혀 겨우 자신을 이롭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평화로운 생산을 겨루는 대신 무력으로 빼앗는 데 매달린다.

 

 

영국과 독일의 무역 (英独の貿易)

고객을 죽이다 (華主の殺戮)

영국은 현재 독일 무역의 가장 큰 고객이 아닌가. 독일도 영국의 무역 고객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않는가. 두 나라의 무역은 최근 10년 동안 이미 수천만이나 늘었다. 영국의 대독일 무역액은 대오스트레일리아 무역액에 크게 뒤지지 않으며, 캐나다와 남아프리카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 독일이 영국 자본을 들여와 이용하는 규모도 작지 않다. 서로를 격파하고 압도하기를 즐긴다면 자기 무역의 큰 부분을 잘라내기를 즐기는 셈이다. 다른 열강의 관계도 대체로 그렇다. 세상 상인이 자기 고객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것이 돈 버는 비결이라고 한다면 누가 웃지 않겠는가. 유럽과 미국 여러 나라가 남을 괴롭혀 자국의 이익을 꾀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지 않은가.

나는 슬프다. 지금의 시장 확장 경쟁이 군비 확장 경쟁과 같고, 관세전쟁이 무력전쟁과 같다는 것이 슬프다. 남을 괴롭히려 먼저 자신을 괴롭힌다. 남의 이익을 깎으려 먼저 자기 이익을 깎아야 한다. 그 끝에서 다수 국민은 곤궁해지고 굶주리고 부패하고 멸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제국주의자의 경제는 미개인의 경제요 티무르식 경제다. 부정하고 불의하며 비문명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정치가의 눈앞의 헛된 명예와 투기꾼의 일시적 횡재를 위한 것일 뿐이다.

 

 

일본의 경제 (日本の経済)

우리 일본의 경제를 돌아보면 사정은 더욱 심하다. 일본에는 무력이 있으므로 해외에 국기를 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국기 아래 투자할 자본이 얼마나 있는가. 그 시장에 내놓을 상품을 얼마나 만들 수 있는가. 영토를 한 번 넓히면 군인은 더 날뛰고 정부 지출은 더 늘며 자본은 더 부족해지고 생산은 더 위축될 것이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붙들고 나아간다면 결과는 오직 이럴 뿐이다.

 

 

그 어리석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その愚及ぶべからず)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자는 자본 과잉과 과잉생산을 구실로 삼지만 일본의 경제 사정은 정반대다. 그 나라들의 대제국 건설이 부패와 몰락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도 얼마 동안은 국기의 허영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세운 제국을 단 하루라도 제대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함부로 많은 군대와 전함을 거느리고 ‘제국주의여!’ 하고 외친다. 일본 제국주의자의 어리석음은 참으로 따라갈 수 없다.

 

64. 여기의 자유경쟁은 개인적 자유 일반이 아니라 자본가 사이의 시장경쟁을 중심으로 한 경제제도를 뜻한다. 사회주의적 제도의 구체적 운영 방식은 이 책에서 충분히 설계되지 않는다. 이를 곧바로 국가소유나 후대의 특정 체제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5

 

영국 식민지의 결합 (英国殖民地の結合)

영국의 제국주의자는 또 말한다. ‘우리 군사 대비를 완전하게 하려면 식민지 전체를 굳게 통일하고 결합해야 한다.’ 호전적인 애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그러나 몹시 우습다.

 

 

불리함과 위험 (不利と危険)

영국인이 늘 방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걱정하는 것은 바로 영토가 지나치게 넓기 때문이 아닌가. 식민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처음 모국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 자유와 옷과 먹을거리를 구하려고 먼 타향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제 저마다 번영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대제국 통일이라는 이름 아래 모국의 간섭과 속박을 다시 달게 받아야 하는가. 모국을 위해 막대한 군비와 병역을 부담하고, 늘 모국과 함께 유럽과 미국 여러 나라의 분쟁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그보다 더 큰 불이익과 위험은 없을 것이다.⁶⁵

 

 

작은 영국 시절의 무력 (小英国当時の武力)

무력이 무익하며 죄악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다. 그래도 자국 방어가 꼭 필요하다고 치자. 방비를 두루 갖추고 무위를 떨치는 것은 영토가 넓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며 대제국을 세워야만 가능한 일도 아니다. 펠리페 2세의 스페인 대제국을 격파하던 때 영국은 아직 이른바 작은 영국이지 않았는가. 루이 14세의 프랑스 대제국을 격파하던 때에도 작은 영국이지 않았는가.

 

 

영국이 번영한 이유 (英国繁栄の原由)


무력이 찬란하게 빛나던 때는 바로 작은 영국 시절이었다. 제국주의자가 정말 방비가 부족할까 걱정한다면 왜 단호히 각 식민지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가. 그렇게 해야 비로소 마음 놓고 잘 수 있고, 식민지들 역시 자유의 복리를 기뻐할 것이다.

영국의 종래 번영과 팽창은 무력이 아니라 풍부한 철과 석탄의 확대에 힘입었다. 무력의 침탈과 강탈이 아니라 평화로운 제조업에 힘입었다. 그 과정에서 한때 길을 잘못 들어 야수적 본성을 마음껏 부리고, 고대 제국주의를 따라 식민지에 티무르식 경제 수단을 적용한 적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미국의 이탈을 겪고 깨달아 계획을 바꾸고 식민지의 자치를 허용했다. 그러므로 그 넓은 영토는 사실 제국주의자가 말하는 제국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혈통·언어·문학이 같고 참된 공감이 변하지 않으며, 무역에서 서로의 이익이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이 오래 유지되고 끝없는 번영을 가져올 수 있었다.

 

 

영국 제국의 존속은 시간문제다 (英帝国の存在はタイムの問題)


영국이 예부터 무력의 허영에 취해 대륙 여러 나라와 세력 다툼에만 매달렸다면 오늘의 큰 나라가 될 수 있었겠는가. 아니, 지금처럼 크더라도 앞으로 국기와 무력의 영광을 위해 각 식민지에 불이익과 위험을 떠넘겨 공감을 잃는 일을 저지른다면, 대영제국의 존립은 실로 시간문제가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지금 체임벌린의 들끓는 야심은 피트와 디즈레일리의 계보를 이어받아, 이 평화로운 큰 국민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독한 술에 빠뜨리고 옛 무력 제국들이 멸망한 길을 밟게 하려 한다. 이 명예로운 국민을 생각하면 깊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키플링과 헨리 (キップリングとヘンレー)


공명에 조급한 군인과 정치가, 횡재를 좇는 투기꾼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학식과 지식이 있어 국민의 정신적 교육에 무한한 책임을 진 문인과 시인들까지 서로 이끌며 무력 팽창을 외친다니 통탄할 일이다. 영국에서는 키플링과 헨리가 대표적이다.⁶⁶

그들은 야수적인 애국자가 먹잇감을 구하는 것을 보고 찬미한다. ‘국기의 영광이다. 위인의 공적이다. 국민적 사상을 일깨우는 일이다. 누가 세실 로즈가 우리 영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하지 않겠는가. 누가 키치너의 공적을 숭상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은 제국에 수천 마일의 영토를 더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르툼의 국치를 씻어 거친 약탈의 풍속을 문명과 평화로 바꾸었다.’⁶⁷

 

 

제국주의는 사냥꾼의 생계다 (帝国主義は猟夫の生計)


제국주의가 정말 야만인을 토벌하고 없애 문명과 평화의 정치를 펴는 데 있다면, 제국주의의 생명과 활력은 야만인이 존재하는 동안에만 이어진다. 사냥꾼의 생계는 주변 산야에 새와 짐승이 날고뛰는 동안에만 유지된다.

남아프리카를 완전히 평정하면 로즈는 어디서 또 다른 남아프리카를 찾을 것인가. 수단을 정복하고 나면 키치너는 어디서 또 다른 수단을 찾을 것인가. 토벌할 야만인이 없어지면 그들은 국기의 영광을 잃고 국민적 사상도 사라지며 위인의 공적도 구할 수 없게 된다. 덧없는 것은 제국주의의 앞날이 아닌가.

큰소리로 국민의 호전성을 부추기는 키플링과 헨리의 생각은 내 눈에는 몹시 어린애 같다. 참으로 사회 문명의 진보와 복리를 바라는 사람은 이래서는 안 된다.

 

65. 이 절은 주로 영국계 이주민의 자치 식민지를 모델로 논한다. 인도 등 모든 식민지 주민이 모국에서 이주한 영국계 주민이었다는 뜻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뒤의 식민지 자치와 공통 혈통에 대한 설명에도 같은 한계가 있다.

66. 러디어드 키플링과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영국의 작가·시인이다.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를 북돋는 문학의 책임을 묻는 대목이다.

67. 1885년 하르툼에서 찰스 고든이 마흐디군에 패해 죽은 일을 영국의 ‘국치’로 부르고, 1898년 키치너의 정복을 그 복수로 묘사한 제국주의 담론이다. 본문의 표현은 그 담론을 인용하여 비판하는 말이다.

 

 

6

 

제국주의의 현재와 미래 (帝国主義の現在将来)

이상과 같이 살펴보면 제국주의의 현재와 장래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비천한 애국심을 증오할 군국주의로 실행하는 한 정책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결과는 타락과 멸망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제국 건설은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며, 복리가 아니라 재앙이다. 국민의 팽창이 아니라 소수의 공명심과 야심의 팽창이다. 무역이 아니라 투기이며, 생산이 아니라 강탈이다. 문명을 기르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문명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것이 사회 문명의 목적이며 국가 운영의 본뜻인가.

이민을 위해서라고 말하지 말라. 이민에는 영토 확장이 필요하지 않다. 무역을 위해서라고 말하지 말라. 무역에도 영토 확장이 필요하지 않다. 영토 확장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군인과 정치가의 허영심, 금광과 철도의 이익을 좇는 투기꾼, 군수품을 공급하는 어용상인뿐이다.

 

 

국민의 존엄과 행복 (国民の尊栄幸福)

국민의 존엄과 영광과 행복은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도덕 수준의 높이에 있다. 무력의 강함이 아니라 이상이 얼마나 고상한가에 있다. 군함과 병사의 수가 아니라 옷과 먹을거리의 생산이 얼마나 풍부한가에 있다. 영국이 누려온 영광과 행복이 광대한 인도제국을 소유한 데 있기보다 셰익스피어 한 사람을 가진 데 있다는 칼라일의 말은 참되지 않은가.⁶⁸

 

 

독일이라는 나라는 크지만 독일인은 작다 (独逸国大にして独逸人小なり)

로버트 모리어 경은 비스마르크를 평하며 ‘그는 독일을 크게 만들었지만 독일인은 작게 만들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 영토의 위대함은 흔히 국민의 위대함과 반비례한다. 대제국 건설은 오직 무력과 야수적 본성의 팽창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고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나라를 강하게 하려고 사람들을 약하게 하며, 국광과 국위를 빛내려고 사람들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킨다. 그래서 제국주의는 나라를 크게 하고 사람을 작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때의 물거품 (一時の泡沫)

국민이 이미 작아졌는데 국가만 클 수 있겠는가. 커 보이는 것은 잠깐의 거품이요 공중누각이요 모래 위의 집일 뿐이다. 큰바람 한 번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구름과 안개 같은 것임은 옛 역사가 밝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슬프게도 세계 여러 나라는 앞다투어 이 거품 같은 팽창에 힘쓰면서,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위험을 알지 못한다.

 

 

일본의 제국주의 (日本の帝国主義)

우리 일본도 이 주의에 열광하며 돌아서지 않는다. 열세 사단의 육군과 30만 톤의 해군을 확장했다. 타이완을 차지하여 영토를 늘렸고 북중국 사건에는 군대를 보냈다. 국위와 국광은 높아졌고 군인의 가슴에는 수많은 훈장이 달렸다. 의회는 찬양하고 문인과 시인은 노래했다. 그래서 국민은 얼마나 커졌는가. 사회는 얼마나 복리를 얻었는가.

 

 

그 결과 (その結果)

8천만 엔이던 한 해 지출은 몇 년 만에 세 배가 되었다. 타이완 경영은 점령 이후 본국에서 1억 6천만 엔을 빼갔다. 2억의 배상금은 꿈처럼 사라졌다.⁶⁹ 재정은 더 어지러워졌고 수입 초과는 더 커졌다. 정부는 증세에 증세를 거듭했다. 시장은 더 궁해지고 풍속은 더 퇴폐했으며 죄악은 날마다 늘었다. 그런데 사회 개혁을 말하면 욕과 조롱이 돌아오고 교육 보급을 논하면 냉소가 돌아온다. 국력은 날마다 고갈되고 백성의 삶은 날마다 옥죄인다. 이 흐름이 몇 년 더 멈추지 않는다면, 동양 군자국의 2,500년 역사도 기장밥 한 솥 짓는 동안의 꿈이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⁷⁰ 아, 이것이 일본에서 제국주의가 이룬 공덕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단언한다. 제국주의라는 정책은 소수의 욕망을 위해 다수의 복리를 빼앗는 것이다. 야만적 감정을 위해 과학적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다.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없애고, 사회의 정의와 도덕을 해치고, 세계의 문명을 파괴하는 해충이다.

 

 

68.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과 영웅숭배』에서 인도제국과 셰익스피어를 대비했다. 로버트 모리어는 영국 외교관으로 독일 정치에 정통했다. 두 인용은 고토쿠의 일본어 서술을 따라 번역했다.

69. 청일전쟁 배상금과 타이완 식민 경영 비용 등을 가리킨다. 원문의 ‘2억’은 숫자를 그대로 보존했다. 시모노세키조약의 배상금 원금은 은 2억 냥이므로 앞뒤의 엔 표기와 자동으로 같은 화폐 단위로 읽어서는 안 된다.

70. ‘2,500년’은 신무 천황(진무 천황, 神武天皇) 이래의 건국 연대를 전제로 한 당시 일본의 국가 서사다. 기장밥 꿈은 『침중기』의 황량몽 고사로, 한평생의 영화가 밥 한 솥 익는 사이의 꿈이었다는 뜻이다.

 

 

제5장 결론 (第五章 結論)

 

새로운 세계의 건설 (新天地の経営)


아, 20세기라는 새 세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온전히 꾸려갈 것인가.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바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그 평화를 어지럽힌다. 우리는 도덕이 융성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도덕을 해친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바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파괴한다. 우리는 생산과 분배가 공정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그 불공정을 더욱 부추긴다. 문명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이보다 큰 것은 참으로 없다.

 

 

20세기의 위험 (二十世紀の危険)


이것은 나 혼자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해 『뉴욕 월드』가 ‘20세기의 위험’이라는 주제로 유럽과 미국의 저명인사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군비주의와 제국주의가 두렵다고 답한 사람이 매우 많았다.⁷¹

프레더릭 해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정치에서 위험한 것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지나치게 많은 군대와 군함과 군자금을 쌓아두는 일이다. 그 결과, 그 나라들의 통치자와 인민이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땅에서 패권을 다투도록 이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즈리얼 장윌은 “20세기의 위험은 군국주의라는 중세 사상이 반동적으로 되살아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키어 하디는 “군국주의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라고 했고, 카를 블린트는 “위험은 제국주의다”라고 말했다.⁷²

 

 

페스트의 유행 (ペストの流行)


그렇다. 제국주의가 혐오스럽고 두려운 것은 페스트가 퍼지는 것과 같다. 그것이 닿은 곳은 이내 멸망에 이르고야 만다. 이른바 애국심은 바로 그 병균이며, 이른바 군국주의는 바로 그 병을 옮기는 매개체다. 18세기말 프랑스혁명이라는 대대적인 소독이 유럽의 천지를 쓸어내어 이 병을 한때 사라지게 했다. 그 뒤 영국의 1832년 개혁, 프랑스의 1848년 혁명, 이탈리아의 통일, 그리스의 독립도 모두 이 역병을 막으려는 일이었다.⁷³ 그러나 그사이에 나폴레옹, 메테르니히, 비스마르크 같은 자들이 번갈아 병균을 퍼뜨렸기에 오늘의 재발을 불러오고 말았다.

 

 

애국심이라는 병균 (愛国的病菌)

이제 애국이라는 병균은 관과 민, 위와 아래에 두루 퍼져 있다. 제국주의라는 페스트는 세계 각국에 전염되어 20세기의 문명을 모조리 부수고야 말 기세다. 사회개혁에 앞장서며 국가의 병을 고치는 의사를 자임하는 뜻있는 이들이 크게 떨쳐 일어서야 할 때가 아닌가.

 

 

대대적인 정화와 대혁명 (大清潔法大革命)

그렇다면 무슨 방도로 오늘의 위급함에 대처할 것인가. 다른 길은 없다. 다시 사회와 국가를 대대적으로 소독하라. 달리 말해, 세계적인 대혁명 운동을 시작하라. 소수의 국가를 다수의 국가로 바꾸어라. 육해군인의 국가를 농민과 장인과 상인의 국가로 바꾸어라. 귀족이 전제하는 사회를 평민이 자치하는 사회로 바꾸어라. 자본가가 횡포를 부리는 사회를 노동자가 함께 소유하는 사회로 바꾸어라.

그렇게 한 뒤에야 정의와 박애의 마음이 편협한 애국심을 누를 것이다. 과학적 사회주의가 야만적인 군국주의를 없앨 것이다. 형제애에 바탕을 둔 세계주의가 약탈적인 제국주의를 남김없이 쓸어낼 수 있을 것이다.⁷⁴

 

 

칠흑 같은 지옥 (黒闇々の地獄)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부정하고 의롭지 못하며, 비문명적이고 비과학적인 오늘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때라야 사회의 영원한 진보를 기약하고 인류 전체의 복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지금의 흐름을 오래도록 내버려 둔 채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 주위에는 온갖 귀신이 밤중에 날뛰는 광경만 있을 뿐이요, 우리 앞길에는 캄캄한 지옥만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 끝

 

 

71. 원문의 신문명 ‘紐育ワード’는 문맥상 미국의 『뉴욕 월드』(New York World)를 가리킨다. ‘지난해’는 1900년이다. 여기의 설문과 발언은 고토쿠가 전하는 내용을 번역했다.

72. 프레더릭 해리슨은 영국의 실증주의 사상가, 이즈리얼 장윌은 영국 작가, 키어 하디는 영국 노동운동과 독립노동당의 지도자, 카를 블린트는 독일 출신의 공화주의자다. 원문의 음역을 현대 독자가 식별할 수 있는 이름으로 옮겼다.

73. 영국의 1832년 개혁은 선거구와 선거권을 고친 의회개혁법을 뜻한다. 뒤의 여러 사건을 모두 제국주의의 ‘방역’으로 묶는 것은 저자의 역사 해석이다. 민족국가 형성 운동의 모순까지 해소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 전쟁 뒤 유럽의 보수적 질서를 이끈 오스트리아 정치가다.

74. ‘과학적 사회주의’와 ‘형제애의 세계주의’는 원문의 표현이다. 국가·계급·국경을 넘어서는 연대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이 결론을 훗날 고토쿠가 수용한 아나키즘의 완성된 강령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공유’ 역시 생산과 재산의 공동 소유를 요구하는 표현으로 옮겼으며, 구체적인 소유·운영 제도를 덧붙이지 않았다.

 

 

 

부록: 원본의 권말 기록

 


판권지


메이지 34년(1901년) 4월 18일 인쇄 · 4월 20일 발행
정가 25전 · 복제 불허
저자: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발행자: 후쿠나가 분노스케(福永文之助). 도쿄시 교바시구 우네메초 24번지.
인쇄자: 무라오카 헤이키치(村岡平吉). 요코하마시 오타마치 5초메 87번지.
발행소: 경성사서점(警醒社書店). 도쿄시 교바시구 우네메초 24번지. 전화 신바시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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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와 문학(宗敎と文學) | 우치무라 간조 강술 | 16 / 2 |
| 외국어 연구(外國語之硏究) | 우치무라 간조 저 | 25 / 4 |
| 뜻을 세우는 원천(立志の源泉) | 모토세 류키치(本瀨龍吉) 저 | 40 / 6 |
| 윤리·종교 시론(倫理宗敎時論) | 기시모토 노부타(岸本能武太) 저 | 40 / 6 |
| 영문 천로역정(英文天路歷程) | 존 번연 저 | 고급본 55 / 6; 보통본 45 / 4 |
| 외교관·영사관 제도(外交官領事官制度) | 하라 다카시(原敬) 저 | 20 / 4 |
| 러시아·청나라 관계(露淸關係) | 로쿠코 인시(綠岡隱士) 편역 | 35 / 미기재 |
| 영웅숭배론(英雄崇拜論) | 스미야 덴라이(住谷天來) 역 | 50 / 6 |
| 세상을 깨우치는 잡문(警世雜著) | 우치무라 간조 저 | 30 / 4 |
| 후세에 남길 가장 큰 유산(後世への最大遺物) | 우치무라 간조 저 | 15 / 2 |
| 근세 신불습합론(近世神佛習合辨) | 아다치 리쓰엔(足立栗園) 저 | 30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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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본의 손글씨

본문 마지막 쪽 위에는 인쇄된 본문과 별개로 바이런의 시구를 적은 영어 손글씨가 있다. 작성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자유여! 그래도 너의 깃발은, 찢겼지만 여전히 나부끼며, 폭풍처럼 바람을 거슬러 펄럭인다.”

이는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의 구절⁷⁵이다. 손글씨는 원시의 일부 어구를 달리 적고 있다. 도서관 표지·관리 표식과 빈 면은 번역 대상 본문에서 제외했다.

 

75. "Yet, Freedom! yet thy banner, torn, but flying, Streams like the thunder-storm against the wind;"

 


원전과 역주 참고자료

고토쿠 슈스이, 『帝國主義』, 경성사, 1901년 4월.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본, 영구 식별자 783518. 본문 인쇄면 1~134쪽, 우치무라 간조의 서문, 저자의 머리말 및 권말 자료를 번역했다.

원전 스캔: https://dl.ndl.go.jp/pid/783518
서지 정보: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00000437589

 

역주는 원전의 용례와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본문의 인용과 수치를 현대 자료의 문장이나 통계로 바꾸지 않았으며, 해석이나 불확실한 식별은 해당 주석에 표시했다.

역주의 주요 확인 자료는 다음과 같다.

- 저자의 사상적 이력: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幸徳秋水」. https://www.ndl.go.jp/portrait/datas/6253
- 아나키즘으로의 전환 시기: 가나가와현립도서관, 「幸徳秋水」. https://www.klnet.pref.kanagawa.jp/uploads/2020/12/gw10_koutoku.pdf
- 역주 14의 시: 매콜리, 『고대 로마의 노래』, 「호라티우스」. https://www.gutenberg.org/files/847/847-h/847-h.htm
- 역주 20의 피털루 사건: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의 사건 해설과 사료. https://www.nationalarchives.gov.uk/explore-the-collection/explore-by-time-period/georgians/the-peterloo-massacre/
- 역주 45의 드레퓌스 사건: 미국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 「Alfred Dreyfus and the Dreyfus Affair」.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article/alfred-dreyfus-and-the-dreyfus-affair
- 역주 46·67의 수단 전쟁: 영국 국립육군박물관, 「Egypt and Sudan」 및 마흐디 무덤 사진 해설. https://www.nam.ac.uk/explore/egypt-and-sudan
- 역주 54의 헤이그 회의: 1899년 최종의정서, 국제적십자위원회 조약 자료. https://ihl-databases.icrc.org/en/ihl-treaties/hague-finact-1899
- 역주 69의 배상금: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外交史料館報』 제33호. https://www.mofa.go.jp/mofaj/files/100086817.pdf
- 역주 73의 영국 의회개혁: 영국 의회, 「The Reform Act 1832」. https://www.parliament.uk/about/living-heritage/evolutionofparliament/houseofcommons/reformacts/overview/reformact1832/
- 소장본 손글씨의 출전: 바이런,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제4편 98연. https://www.gutenberg.org/files/5131/5131-h/5131-h.htm